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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인간이 느끼는 행복

두 종류의 행복이 가진 차이를 가장 간단하게 묘사한다면, 하나는 모든 인간에게 허용되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에게 허용되는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몰라도 육체적인 노동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신체 건강하고, 일거리 넉넉하고, 노동을 통해 성취하는 것으로 행복하다. 성공 여부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어려움이 있어야 성취의 기쁨이 뒤따른다. 오늘날 사회에서 상당한 학식을 갖춘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과학자들이다. 저명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단순하며, 자신의 직업에서 얻는 만족감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데서도 기쁨을 얻고, 결혼 생활에서도 기쁨을 얻는다. 감정을 단순화해야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복잡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복잡한 감정이란 강물의 물거품 같은 것이다. 과학자의 삶에서는 행복의 모든 조건이 실현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신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눈에도 중요하게 보이는 업적을 달성한다. 과학자들의 일을 이해 못하는 일반인도 그들의 업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술가보다 과학자가 행복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그림이나 시를 이해할 수 없으면 좋은 그림, 좋은 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결국 최고 실력의 화가들이 다락방에서 굶주리는 동안 과학자들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다. 예술가들이 괴로워 하는 동안 과학자들은 행복을 누린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라면 두 가지 불행 중 어느 하나와 마주쳐야 한다. 자기 재능을 끝까지 발휘하려고 한다면 멸시당하며 살 것이고, 그것을 포기한다면 비굴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언젠가 인정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최고의 학식을 갖춘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냉소주의는 안락감과 무력감의 결합에서 생기는 것이다. 무력감은 사람들이 모든 일에 대해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안락감은 이런 생각을 할 때 느끼는 고통을 웬만큼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 농부는 자기 소유의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하지만 농부들은 농사와 관련된 여러가지 환경요소에 끌려 다녀야한다. 수렵으로 식량을 구하던 시절에는 일이 곧 오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업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화가 치미는 기나긴 세월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으며, 고마운 기계 덕분에 고통을 벗어나고 있다. 일시적인 열광이나 취미는 근본적인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 현실 도피의 수단에 불과하다. 현실 도피의 수단이라고 한 것은 이겨내기 힘든 고통이 다가오는 순간을 잊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인간의 모든 행복이 개인적인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비록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행복보다 더 많은 행복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것을 얻게 되는 확실한 방법이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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