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특징은 도덕과 신념이 철저하게 다른, 여러 계층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견해 차이 때문에 특정한 취미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는 배척당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런 견해 차이로 엄청나게 많은 불행이 빚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환경이 전 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잘못된 견해라 비난 받을까봐 두려워 내놓지 못하는 견해들이, 다른 곳이나 다른 계층에서는 평범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경우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위 사람들과 마음이 맞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마음이 맞는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 시대의 지배적인 편견을 수용하고, 본능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신념과 관습에 순응한다. 하지만 이런 순응적인 태도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도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개도 자기를 얕잡아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자기를 무서워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큰소리로 짖고, 더 거리낌 없이 물어댄다. 대중 역시 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속한 사회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신경과민이 되고, 기분이 언짢으며, 느긋하고 기분좋게 익살을 부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자기 견해를 인정하는 계층으로 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소심하게 굴던 태도가 명랑해지고 자신 있는 태도로 당당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무지 또는 편견, 잔혹성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주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것은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징조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청소년기에 발생한다. 일단 적당한 환경에서 적당한 직업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박해를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재능을 검증받지 못한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의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에 놓이기 쉽다.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아는 것이 더 많을수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못한다. 재능있는 사람들도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 재능의 싹을 틔우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고, 열정을 손상 당하지 않고, 재능의 씩을 틔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바람을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무조건 존중하도록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나이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똑같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필요하며,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가 있다.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의 압력에 굴복하고 마는 젊은이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냥 일반 대중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전문가 의견은 존중해야 한다. 크게 보면 굶어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 이러한 한도에서 벗어나 여론에 휩쓸리는 행동은 지나친 횡포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것이고, 모든 면에서 행복을 가로막기 십상이다. 물론 일부러 여론을 조롱하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여론을 조롱하는 것 또한 여전히 여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정말로 여론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힘이자 행복의 원천이 된다.
지나치게 인습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일사분란한 사회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사회다. 사회적 자유의 원천이 상실된 현대 사회에서는 획일화가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일부러 돌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타고난 성격대로 행동하되 결코 반사회적 행동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까운 이웃과 잘 알고 지내야 한다는 관념은 인구 밀집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졌다. 작은 시골마을에는 남아 있지만, 친구를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는 곳이 가까우냐 머냐가 아니라, 마음이 맞느냐 안맞느냐를 기준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취미와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제는 행복감을 증진시킨다. 사회적 교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며, 이를 통해 인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은 차츰 줄어들 것이다.
모든 두려움이 다 그렇지만 여론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옥죄며 발전을 저해한다. 두려움이 강하게 남아있는 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정신적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 행복의 필수 조건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욕구에서 비롯한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이다. 옛날에 비해서 가까운 이웃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언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대원칙에 대해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명예훼손 관련법이 현재 제시된 것보다 훨씬 강력한 방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사 어떤 사람이 나쁜 평판을 얻게 될
만한 언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무고한 개인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이러한 관행은 금지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단 하나, 대중이 관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 뿐이다. 대중에게 관대한 태도를 기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행복한 마음이 있어야 관용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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