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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죄의식

죄의식은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 하는 의식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의식 속에서는 아무리 해도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죄라고 단정하게 되는 행동들이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까닭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때때로 죄의식이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것을 신의 계시나 더 고귀한 행동을 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질병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죄의식은 도덕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비난 받을 만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죄의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도덕 원칙을 지니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미신적인 도덕원칙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죄의식은 바람직한 생활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런 사람은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또한 자신의 불행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기쁨을 얻기 어렵다.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사람을 시기하여 남을 칭찬하기는 망설인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갈수록 외톨이가 된다. 다른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관대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도 남에게 호감을 얻기 때문에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갖지 못한다.

 

극단적인 피해망상은 정신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종류의 질환도 마찬가지지만 극단적인 피해망상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되는 경향이 악화된 것일 뿐이다. 가벼운 피해망상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극단적인 정신질환이 아닌 가벼운 피해망상은 환자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물론 환자가 혼자힘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올바로 진단하고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며 자신이 가상으로 지어낸 다른 사람들의 적의나 불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신을 늘 다른 사람들의 배은망덕하고, 무자비하고, 배신적인 행위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역시 자신에 대해서 그런 따뜻한 애정과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남들이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내가 남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자신의 눈에는 자신의 미덕이 크고 분명하게 보이지만, 남들이 가진 미덕은 만의 하나 있더라도 아주 너그럽게 보지 않으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면서도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자신을 보통 사람과는 달리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이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직접 겪은 한가지 사실은, 그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에 비해서 그의 마음속에 훨씬 깊이 각인된다. 이로 인해 이 사람은 잘못된 균형 감각을 가지게되고, 일반적인 사실보다 예외적인 사실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다.

 

숭고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공직생활의 무대에 들어서서 모든 권력을 차근차근 장악해온 정치가는 자신에게 등돌리는 국민들의 무례한 태도를 보면서 깜짝 놀란다. 이 정치가는 자신의 행동이 공적인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거나, 혹은 자신의 행동이 정사를 좌지우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 스며들어 있을수도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연설을 할 때 습관적으로 쓰는 구절들이 서서히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그는 점차로 그것들이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릴 때에야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 환멸 속에서 물러나며서 공익 추구와 남이 인정해 주지도 않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을 후회 한다.

 

여기서 일반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둘째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 하지마라.

셋째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생각 하지마라.

 

자선가나 정치가는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을 실현하면서 인류 전체 또는 그 일부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때로 옳고, 때로는 옳지 못하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자신들과 똑같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정치가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고, 이와 반대되는 생각은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주관적인 확신이 그가 객관적으로 옳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식욕이 돌아야 침이 제대로 나오고 소화도 잘 된다. 그러므로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식사를 하는 것보다 음식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식사에 적용되는 이런 원칙은 다른 일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무슨 일을

하든 확실한 열정의 도움이 있을 때에만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이기적인 동기가 없으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하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지마라. 만약 당신 그런 확신을 방치하게 되면 당신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음모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런 믿음은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당신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인정하는 편이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그 고통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고통의 끝을 넘어서면 다시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특히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반드시 잊지말아야 하지만 늘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 그들이 당신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봐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은, 당신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에 비해서 훨씬 적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직업과 관심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해코지하는데 집중할 여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비교적 온건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실제로는 자신과 아무관련이 없는 모든 행동들을 자신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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