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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걱정

순전히 육체적인 피로는 지나치지만 않으면 행복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게 마련이며, 깊은 잠과 알맞은 식욕을 불러오고 휴일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열의를 북돋아 준다. 농촌 여성은 과도한 노동에 지쳐서 서른 살만 되어도 늙어버린다. 산업혁명 초기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과도한 노동 때문에 발육이 부진했고, 일찍 죽는 일이 많았다. 일정한 한계를 넘는 육체노동은 무서운 고통이다. 요즘 선진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신적 피로는 부유한 계층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육체노동자들이 사업가들이나 정신노동자들보다 정신적 피로가 훨씬 덜하다. 현대를 살면서 정신적 피로를 벗어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는,  늘 낯선 사람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적 본능 때문에 낯선 상대를 만날 때 마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상대를 탐색한다.  출근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면,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더부룩하다.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가 되면, 이들 사무직 노동자 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람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게 된다.  또 노동자들은 해고가 두려워 공손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행동하다 보면 정신적 긴장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두려워 하는 것처럼 사장은 파산을 두려워한다.  물론 파산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만큼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대개는 그처럼 확고한 지위에 도달할 때까지 오랫동안 격렬하게 몸부림해 왔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파악하는 한편, 경쟁자들의 음모도 물리쳐야 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확실한 성공에 도달하고 나면 그들은 이미 신경쇠약 상태가 되어 있고 늘 걱정하는 버릇이 몸에 베어 걱정할 필요가 없을 때도 그 버릇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데 몹시 서투르다.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 데도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걱정하고 있는 문제가 대단치 않은 것임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걱정 꺼리를 줄일 수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며,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이 끝날 것 같은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사라진다. 나중에는 그 고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자아는 세상에서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자아를 넘어선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일상 생활의 걱정거리

속에서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두뇌 활동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것은 근육 활동을 많이 해서 피곤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과로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특정 종류의 걱정이나 불안이다. 감성적 피로가 가진 문제는 그것이 휴식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피곤할수록 피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신의 일이 몹시 중요하기 때문에 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경쇠약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다. 걱정 때문에 쉬지도 않고 일한다. 이렇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져 오히려 일을 덜 할 때보다 더 파산을 앞당기게 된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일이 아니라 감정적인 병이다. 걱정은 두려움의 한 형태이며 모든 두려움은 피로를 만들어낸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익힌 사람은 일상 생활의 피로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두려움은 우리가 직면하기 싫어하는 어떤 위험이 닥칠 때에도 생기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형태의 두려움이다밑도 끝도 없이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특정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어떤 사람은 암, 어떤 사람은 경제적 파멸 .....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그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욱 심해진다.  생각을 다른대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시선 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무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된다.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게 된다. 친밀감이 들게 되면 두려움의 칼날은 무뎌지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피로는 대체로 자극에 집착하는 데서 생긴다. 여가 시간을 잠자는데 투자하는 사람은 피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극에 대한 욕구기 한계를 넘는다면,  그것은 왜곡된 성격이나 본능적인 불만족의 징후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초기에 사람들은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결혼을 상당히 미루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작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  자극은 이미 습관이 되어버려 잠시 동안만 그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극의 도움 없이 삶을 견디기란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극적인 쾌락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중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강을 해치거나,  일에 방해가 될 만큼 과도하고 소모적인 쾌락에 빠져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신경을 소모하는 쾌락에 빠져 그보다 정도가 약한 쾌락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버릇에 들게 되면 어느듯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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