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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이유 없이 불행한 당신

세상에는 삶의 보람으로 삼을만한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현명하게 여긴다.  역사상 많은 다른시대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행을 자랑거리로 여기고, 불행의 원인을 우주의 본질로 돌려버린다. 런 불행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하고 통찰력 있는 존재라고 여기며, 이러한 자부심에서 약간이나마 보상을 얻는다. 지적인 수준이 그들에게  못미치는 사람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진실성을 의심하지만 ....

만일 당신의 아이가 아프다면 당신은 불행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생명에 궁극적인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당신은 우선 아기의 건강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자도 가끔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재산을 잃는다면 다음 번에도 식사를 하는 일이 덧없다고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자연적 욕구가 너무 쉽게 충족되는데서 비롯된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생존경쟁에 적응해야 한다.  인간이 막대한 재산 덕분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온갖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아무런 노력 없이 산다는 사실,그 자체가 행복의 본질적인 요소를 빼앗아 버린다.  일상적인 욕망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욕망의 충족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

 

인간은 쉬지 않고 애쓰고 있고, 만물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뒤에 오는 새로운 것은 앞서 사라진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영원히 지속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나의 아들, 딸은  나의 뒤를 이어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그들의 자손들은 또 뒤를 이어 살아간다.  이런 가정을 비극으로 여길만한 이유가 있는가?  반대로 영원히 사는 존재라면,  삶의 기쁨은 어쩔수 없이 그 향기를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기쁨은 언제까지 신선함을 지닐 수 있다.  섹스피어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과 인간의 열정이 중요하다는 생각,  인생의 깊이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자가 겪는 슬픔을 다룬 구식의 비극이 현대에 적합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왕자의 슬픔을 다루는 방식으로 평범한 개인들이 겪는 슬픔을 다룬다면,  그 느낌은 다를 것이다.  우리의 인생관이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관이 진보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특정한 개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들만이 비극의 열정을 지닌 권리가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 몇몇의 영광을 위하여 악착같이 일만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지 않기때문이다. 

 

비극을 쓰기 위해서는 비극을 느껴야 한다.  비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피와 근육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이 비극과 침된 행복이 전개될 수 있을 만큼의 진지함과 깊이를 지니려면 공동체의 삶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이 필수이다.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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