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혹은 영국에서 사업하는 모든 사람에게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그들은 생존 경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이렇게 대답할 것이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말이다. 물론 생존경쟁은 현실적 문제다. 만일 우리가 불행한 처지에 빠진다면 누구에게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 사업가가 사용하는 생존경쟁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생존경쟁이란 말은 부정확한 표현이다. 사업가는 사소한 일에도 위엄을 갖추기 위해 이 표현을 즐겨쓴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중에 굶어죽은 사람이 있는가? 사업가가 파산했다 하더라도 파산할 수 있을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풍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실제로 세속적 성공을 위한 경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옆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이런 사업가 생활을 생각해 보라. 그에게 아름다운 집에, 매력적인 아내와 귀여운 아아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단잠에 빠져있을 때 사무실로 나간다. 그가 할 일은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약삭빠르고 과묵한 태도를 꾸민다.
전화로 주요 인사들과 이야기하고, 시장을 조사하고, 거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거래하고 있는 사람과 점심을 먹는다. 오후 내내 같은 종류의 일이 반복된다. 그는 피로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임을 나간다. 모임에서 그는 즐거운 척 하여야 한다. 이 가엾은 사람이 만찬회에서 벗어나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드디어 잠자리에서 잠시 동안 긴장을 푼다. 이 사람은 회사 일을 하는 동안에 경주에 나선 사람괴 비슷한 심리 상태다. 하지만 그가 달리고 있는 목적지는 무덤이므로 경주를 하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은 결국 좀 지나친 것이 되고 만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평일은 사무실에서 보내고, 일요일은 골프장에서 지낸다. 그는 아내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저녁 시간내내 모임 때문에 개인적인 대화는 나누지 못한다. 친한 관계를 맺고 싶어서 서로 친절을 주고 받는 상대는 많이 있지만, 소중한 친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가 봄, 여름에 대해서 아는 것은 계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뿐이다. 그는 여러 나라를 둘러보았겠지만 몹시 지루한 눈으로 구경했을 것이다. 그는 책은 무익한 것, 음악은 고상한 척으로 여긴다. 해가 갈수록 그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의 관심은 점점 더 사업으로만 집중되고, 그 밖의 생활은 무기력해진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 있으면서도 그의 아내와 딸은 독특하고 새로운 것을 남자에게 해보라고 하지만, 가장은 몹시 지치고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회사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아내와 딸은 그를 단념한다. 가장이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남자의 의무이므로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남자는 가엾은 존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한 사업가는 사업에 집중하고, 지나치게 걱정거리가 많은 생활을 계속하느라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돈이 있다고 품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 품위있게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 더욱이 돈의 규모가 그 사람의 두뇌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다. 바보 취급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의 상태가 불안정해지면 사람들은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에 시달린다. 사업이 망한 뒤 빚어질 상황에 대한 공포가 사업가를 불안하게 한다.
심한 가난을 모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다. 행복을 앗아가는 경쟁문제에 있어서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사소한 두려움에 불과하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주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던 화가는 사람들로 부터 재능을 인정 받으면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일정한 시점 까지는 돈이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정한 시점을 넘어서면 그렇지않다. 나는 세속적 성공은 행복의 한가지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성공하려면 경쟁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성공 그 자체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가능하게 한 뛰어난 능력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이다. 돈을 버는 과학자도 있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과학자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과학자가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돈을 버는 다른 과학자보다 덜 존경하지는 않는다. 위대한 장군이 가난하다고 해서 놀리는 사람은 없다. 요즘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경제적인 성공만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경제적으로 볼 때 가치 없는 교육은 신경쓰려고 하지 않는다.
돈이 많아질수록 돈 버는 일은 점점 쉬워진다. 이런 사람은 하루에 5분만 일해도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를 정도의 큰 돈이 굴러 들어온다. 이 불쌍한 사람은 경제적인 성공 덕분에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세속적 성공 그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한 이런 사태는 피할 수 없다. 성공한 것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할지 배워두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후에 권태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습관화 된 경쟁심은 경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야까지 쉽사리 침투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지적인 즐거움을 누릴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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