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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롤프 하우블 지음,이미옥 옮김)

소비사회

심리적으로 충만한 삶이란 복잡하다. 무엇보다 이 상태는 행복과 만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관용어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행복'이란 채우진 틈으로, 살면서 극히 중요한 욕구를 채우면 이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위한 노력은 우리를 충동질하고, 만족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절제시킨다. 행복하려는 욕망이 아주 강하면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에 만족하기 어렵다. 욕망이 작으면, 노력하면 가능할지 모르는 재산 없이도 금방 만족할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하면서, 만족을 도외시하는 사람은 아무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며 늘 뭔가에 쫓기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작 그가 추구하던 행복을 몰아내버리는 결과가 된다.  충만한 삶이란 개인마다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충만한 삶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전혀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이런 탐색행위는 사회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이 사회공간에서는 어떤 재산이 충만한 삶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 기대는 한 집단 또는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기대감은 탐색의 범위를 표시해 준다. 더 이상은 아니다.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한 노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찾는 재산들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도덕적인 가치의 대상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재산이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따라서 충만한 삶이라고 해서 그 모두 가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은행강도가 훔친 돈으로 행복해 하고 만족하다면 우리는 그의 행동을 범죄라고 여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소비사회라고 한다면, 이는 그런 압력이 있다는 증거다. 충만한 삶을 소비 기회의 증가라고 봐야하는 압력으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행복이든 만족이든 찾으라는 말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당연히 행복하고 만족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만일 물질적 풍요를 누림에도 행복과 만족을 찾지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은 무엇보다도 소유를 위한 노력에 기반을 둔다. 이때 노력은 갈망하는 재산을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하려는 노력이다. 두 번째는 이 재산을 편협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편협함이란 탐욕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자신이 가진 물질적 재산을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는 의지다. 세 번째는 시기심인데 자신이 갈망하는 재산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것을 견딜수 없어 한다.

 

칼막스는 사유재산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거센 도덕적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사유재산이라는 권리를 심리적으로 볼 때 병적인 소유욕, 편협, 시기심에 기초한 소유의 한 형태로 본다. 사유재산은 법적으로 재산의 배타적 사용을 보장함으로써, 무일뿐의 사람들에게 이를 소유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탐욕스러운 사람들 간의 전쟁인 경쟁이 발생한다. 여기서 시기심은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은폐된 형태를 띠는데 여기에서 탐욕이 나온다. 마르크스는 병적인 소유욕, 편협, 시기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사유재산의 폐지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의 폐지를 한 단계 상승한 발전이라고 이해한다. 사유재산이 폐지된다고 상상하면 두가지 형태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는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집단화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유재산을 진정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재산으로 바꾸는 것으로, 이 재산은 병적인 소유, 편협, 시기심에서 자유롭다. 그야말로 유토피아적인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이길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광범위한 범위에서 '나'라는 존재는 내 것이라 칭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총체다. 여기에는 육체 뿐만아니라 집, 아내, 자식들, 조상, 친구, 명성, 작품, 땅, 은행계좌, 자동차 등도 포함된다. 시민들은 자신의 삶에 소유를 처방하고, 이로써 자기 것이라 칭할수 있는 소유물에 종속되고 만다.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을 성공했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 물질을 선호한다. 재산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소비사회의 경제는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따라 소비재를 생산한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은 것, 이런 논리는 경제적 이윤을 최대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상된 제품이 구매자를 찾아야만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런 판매 고민이 존재하는 소비습관에 적응해야만하고, 또한 소비에 지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대신 소비를 좋아하는 태도가 널리 퍼지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또 욕구를 개발하는 일로 넘어가고 이는 사람들의 욕구가 유연하다는 점을 십분 이용하게 된다. 소비사회가 목표로 하는 것은 소비산업을 통해 만족시킬 수 있는 욕구를 계속 창출하는 것이다.

 

발전하는 소비사회의 경제는 결핍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 속에서 결핍을 창출하는 것이 과제다. 광고는 바로 이런 과제를 담당한다. 결핍을 창출하는 전략은 소비자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있다. 소비자들은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먼저 가진 물건들을 갈망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을 겨냥한 광고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들은 행복한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떤 물건을 가지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습관을 일찍부터 배우게 된다.

 

재산이 많은 곳은 어디든지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 상당한 부자 한 사람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은 적어도 500명 정도 있는 셈이다. 과도한 부는 가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를 소유한 사람은 시기심으로 인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으려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산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부론의 저자 스미스는 특권층에게 행복을 절제하기를 권한다. 많은 가치있는 재산을 가진 사람은 늘 모르는 적들에 둘러 싸여 있다. 이들은 결코 자극한 적이 없음에도 그는 이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한편으로 스미스는 국민경제가 시기심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권층이 훨씬 잘사는 것을 보면 소외된 자들도 자극받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국민경제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에 속한다. 특권층이나 소외된 자들이나 모두 남들보다 뛰어나려는 성향을 갖고 행동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상향은 끊임없이 차별화 하려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원동력은 야심에 찬 시기심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적대적인 시기심을 완화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처럼 물질적 풍요를 전반적으로 높이게 된다. 스미스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쳐보였다. 하늘이 분노하여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남자에게 명예욕이라는 고통을 내렸다고 한다. 무엇이 특권층이 가진 물건들에 감탄하며, 이를 확득하여 자신의 삶을 향상 시키도록 만드는 것일까? “만일 그가 이런 물건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는 만족할 것이다. 내적인 평화도 찾고 사랑과 행복으로 넘치고, 그는 먼 미래의 행복한 삶을 상상하며 꿈에 부풀어 있다. 그래서 그는 부와 위대함을 얻기 위해 자신을 바친다. 그는 오로지 일에만 정성을 쏟지만,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던 첫 달부터 피로에 지치고 정신적 부담도 커져서, 평생 지금과 같은 피로를 겪어야 할지 모른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어디든지 가고, 좋아하지 않는 일도 하고, 경멸하는 사람에게 복종한다. 평생을 그는 고상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전혀 그렇지 않는 휴식을 쫓아 살게 된다. 그가 어쩌면 결코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휴식을 쫓아서. 야심가가 노인이 되어 자신의 삶 전체를 뒤돌아 보는 때가 온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바친 각고의 노력을 계산해 보면 그는 결국 해내고야 말았지만, 사실 자신에게 진정한 만족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을 위해, 청년기의 여유와 휴식을 바보처럼 희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미스는 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 하늘이 소수의 주인과 소유주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을 때 소외된 자들도 이 땅에서 생산되는 일부분을 향유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땅을 가진 소수의 사람보다 훨씬 많은 행복을 향유할 수도 있다.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며, 길가에서 햇빛을 쬐는 거지도 왕들이 얻기 위해 싸우는 걱정없이 삶을 살 수 있다. 스미스는 경제학자로서 물질적 재산을 끊임없이 향상시키려는 야심에 찬 노력이 환상을 쫓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 어쨋든 이 환상은 국가의 부를 향상시켜 준다. 자연이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속이는 것은 잘된 일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근면하게 일하고 끝없이 움직이게 된다.

 

소비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가 증가하면 더욱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사회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행복이 증가한다는 약속은 일종의 환상이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물질적 풍요는 행복감을 증대시키지 못하며 심지어 감소시키기까지 한다. 획득한 물질적 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사람들의 기질이지 부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부를 포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과 만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구동독에 사는 사람들은 서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때문에 그들은 우울해 질 수도 있다. 동독 시절 그런 시선은 그들에게 힘이 되었다. 서독은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살아갈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서독은 그야말로 복지를 대표하는 국가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풍요는 분노로 변했다. 소비사회에서 행복지수를 조금 더 높이려면 물질적 풍요는 상당히 많이 올려야 한다. 만일 물질적 풍요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행복감 자체를 희생시킨다면, 조금 끌어올린 행복지수 마저 다 소모되고 심지어 정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오로지 물질적인 풍요의 상승만으로 해석한다면 사람들이 물질에서 기대할 수도 있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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