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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롤프 하우블 지음,이미옥 옮김)

동정, 냉소, 자기 방어

동정심은 고통받는 사람의 처지가 될수 있는 능력과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상대가 느끼는 고통을 어느 정도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우리와 비슷해 보이고, 우리 스스로도 한번 쯤은 그런 불행을 직접 경험했다면 동정심을 느끼기는 쉽다. 비록 동점심으로 대단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의 적대심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는 있다. 누군가가 나를 동정하다면, 적어도 이 사람은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따라서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다. 행복한 사람을 보면 그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행복함으로써 권리를 부당하게 가로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행복에 겨워하는자는 우리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다. 바로 이점이 우리를 참을 수 없게 한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을 더 상상하기 쉽다. 그것이 우리와 더 상관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동정심은 달콤하다. 우리는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고 동시에 우리가 그처럼 고통당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기심은 쓰라리다. 시기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의 처지에 서지 못하고, 다만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점을 애석하게 여길 뿐이기 때문이다. 동정심은 기본적으로 시기심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엄청나게 노력하고 위험을 무렵쓴 후에 마침내 성공한 사람들이, 시기하는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은 그들이 어렵게 행복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때로는 측은하게 여기기도 한다. 동정심이 시기심을 극복한 것이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는 물론, 의도와 감정을 당분간 보류할 수도 있다. 그래야만 마치 자신이 그런 상태에 놓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감정이입은 타인을 이해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할 전제 조건이다. 타인에게서 자기 모습을 인지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타인이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도와 감정을 아는 사람만이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품은 사람이 감정이입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데는 한가지 원인이 있다. 상대가 처한 상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면, 그를 비하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것이다.

 

시기하는 사람은 시기의 대상이 가진 재산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갈망하는 재산을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상황은 그의 눈 앞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자기와 상대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데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그는 다른 조건들을 거들떠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시기하는 사람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편견을, 다른 사람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갈망하는 재산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소유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 무엇보다 갈망하는 재산을 얻기 위해 힘들게 노력해야 한다면, 그는 분명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직업적으로 성공한 어떤 사람을 시기할 경우, 그는 상대가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냉소는 흔히 허무주의가 실제로 나타난 형태다. 냉소주의자는 자신에게 가치있는 것 조차 비하한다. 자신이 갈망하는 재산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믿음도 파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이 소유한 재산을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으면 냉소주의자들은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그렇다면 냉소주의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 재산이 정말 가치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때다. 이렇게 되면 냉소주의자는 시기심으로 온몸이 산산히 조각난다. 따라서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자신이 먼저 상대를 공격한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시기심을 느끼고 있다. 왜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일까? 자신은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은 계속 살 수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위로가 되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 그가 갈망하는 삶을 보면서 시기심과 절망적으로 싸움을 벌인다. 그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죽어야 하듯이 다른 사람들은 특별히 잘한 일도 없는데 계속 살고 있다. 시기심을 품은 사람은 세상 전체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봉사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감이 무너지면 그는 기만당한 느낌을 갖게 되고, 이런 느낌과 좀처럼 타협할 수 없다. 그에게 세상은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론 세상이란 단지 유치한 소원이나 충족시켜 주는 환상이다. 세상은 망해야 한다. 또 다른 기만을 당하느니 차라리 세상이 불타버리면 더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위협 당하고 있는 자신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비합리적이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수단을 선택한다.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에서 시기심을 보여주는 반응은 시기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수단을 선택한 경우를 말한다.

 

어떤 재산이 이상적인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이 될수록 그 재산을 갈망할만한 가치가 커진다. 실제의 자신이 이상적인 자신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이를 결함 또는 치욕으로까지 생각하게 된다. 수치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이란 우리가 실패나 좌절을 했을 때 동반하는 감정이다. 특히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만한 합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상을 대단한 사람으로 정해둘수록 실제 자신은 형편없이 보이고, 결국 이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기심이 발동한다. 이상적인 자아에 속한다고 여기는 재산을, 우리보다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을 만나면 시기심을 품게된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늘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부족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를 진정 시킬 수단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적대적인 시기심이 등장한다. 시기심은 자신에게 또는, 분노와 불쾌감을 갈망하는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돌린다. 이 원인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이 이뤄낸 성과를 통해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끼게된다.”  시기심은 늘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정열이기도 하다. 시기하는 사람은 불쾌감, 분노 증오를 발산함으로써 심리적인 부담을 던진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그의 욕구는 진정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시기의 대상에게 가하는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가지는 동안, 그는 다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늘 눈 앞에 그리고 있을 뿐이다. 원하는 재산을 포기하거나 또는 그것을 직접 획득하지 않는한, 그는 그것을 속절없이 갈망할 따름이다. 시기하는 사람은 특정 재산을 강렬하게 갈망하면 할수록 스스로에게 더 많은 해를 입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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