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관점에서 시기심은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룰 수 있다. 먼저 시기심은 하나의 감정으로 흔히 매우 정열적인 감정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 시기심은 하나의 동인이 될수 있다. 동인은 행동하게 하는 원인이다. 끝으로 시기심은 하나의 특성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시기심은 지속적으로 동인이 되어버린다. 이런 사람은 시기심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자신이 갈망하는 재산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대적으로 반응한다면 시기심에 해당한다. 시기심에 두가지 특징이 더 있다. 하나는 '감탄'이고 다른 하나는 '뽐내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원하는 재산을 소유한 다른 사람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이 사실은 감탄하는 척 속인다면 이는 시기심에 해당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우울해하는지 아니면 슬퍼하는지를 구분하기도 한다. 슬퍼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며 원망하지 않는다. 한 예로 우울한 사람은 관대하지 않다. 그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는 것을, 기대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 이 감정은 시기심과 비슷하다. 시기심의 적대감은 상대에게 향하고, 우울하거나 풀이 죽은 상태의 적대감은 자신에게 향한다.
시기심과 낙담 사이에 체계적인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낙담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시기심을 극복하기 위한 특정한 형태다. 자신이 정말로 감탄하는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처럼, 낙담이란 시기심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형태인 것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시기심을 극복하는 세 가지 형태는 우울, 야심, 분노가 바로 그것이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시기심은 갈망하는 재산을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에 생긴다. 야심에 찬 고무적인 시기심은 상대를 진정으로 감탄하고, 그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또는 그와 경쟁할 때 생긴다. 분노에 찬 논쟁적인 시기심은 상대가 재산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믿을만한 정당한 근거가 있을 때 생긴다. 시기심이란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진 재산을 갈망한다는 것을 전재로 할 때, 어떤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그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막 성공적으로 재산을 갖기 시작했을 때 시기심을 느끼게 된다. 재산이 이 두 사람 사이를 구분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면, 이처럼 특권의식을 주는 사회적 간격이 점점 좁아질 때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치고 올라오는 신출내기가 발전을 거듭해서, 마침내 자기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는 까닭에 시기심이 발동한다. 여기에서 적대감은 예전에 두 사람사이에 존재했던 간격을 유지하거나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 위해 상대의 발전을 차단하려는 욕구에서 일어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막 출세하기 시작한 사람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이는 또하나의 시기심을 유발한다.
언어상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시기심과 질투는 개념상 서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시기심은 시기하는 사람과 시기의 대상이 있는 사람이라는 두 명의 인물을 전재로 하는 반면 질투는 삼각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질투의 형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남녀 간의 질투는 질투심에 불타는 남자, 사랑 받는 여자, 이 여자를 두고 경계하는 남자로 구성된다. 시기심의 경우 갈망하는 재산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고, 이와는 달리 질투의 경우에는 누군가 재산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사람이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한 시기심과 질투는 공통적으로 적대감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원죄는 시기심 때문에 생겨났으므로 교회는 시기심을 대죄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다.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여러가지 죄를 하나의 도식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시기심 역시 대죄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그레고리오 교황의 도식에서는 자만심이 모든 죄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기심, 분노, 탐욕, 나태, 탐식, 육욕. 고대의 신들은 인간적인 특성을 가진 초인간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행복을 시기심에 가득차서 추적하고 만일 그 행복이 과도하다 싶으면 이를 파괴한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신이다. 기원전 고대 시대의 신들은 사람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목적으로 개입한다. 어떠한 사람도 무한한 행복을 누려서는 안된다. 심지어 떠벌리며 자랑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차별 대우를 받는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결국 우울해지거나 상대를 적대시하기 때문이다. 신들이 나서서 균형을 맞추면 사회의 평화가 유진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믿었던 중세시대에는 신적인 질서와 인간질서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중세에는 인간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바로 신이 원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조상으로도 엄격한 신분의 차이가 있는 위계질서가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신분을 지키는 것은 중세 질서에서는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도덕적인 기본이었다.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이 기본을 국민에게 가르쳤는데,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던 동물을 등장시킨 우화를 이용하곤 했다. 우화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한 당나귀는 일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재치있고 영리한 개의 펴안한 삶을 부러워 했고, 한번은 개의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하지만 당나귀가 개처럼 주인을 핥자 주인은 그를 마구 때리며 쫓아버렸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교훈은 재치있고 영리하게 구는 것이 개에게 적합하듯이 당나귀는 자루를 지고 다니는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본성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성은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은 신이 정해 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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