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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오츠 슈

삶과 죽음, 고향, 맛있는 음식, 결혼, 자식

열세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인생이란 타인과의 연결고리 속에 존재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늘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낀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슴치는 후회를 할지 모른다. 세상은 고통과 고뇌로 넘쳐난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장애물과 부딪치는데, 이런 팍팍한 현실을 놓고 보면 인생은 고통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한편 살아 숨쉬는 동안 소소한 행복을 느낄 때도 있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눌 때가 그렇다. 행복의 정점을 지나면 나오는 다음은 불행이고, 반대로 불행의 밑바닥에 있다면 그 후에는 행복이 찾아온다. 인생이란 흔들리는 돛단배와 같다. 그러기에 가치관 혹은 인생관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확고한 축, 자신의 철학이 없으면, 가라앉고 말 것이다. 실제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단순히 살아있는 시간만이 행복이고 죽음은 불행하다고 믿는다면, 인간의 일생은 틀림없이 불행하게 마감된다. 사는 일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상실의 체험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병원에서 일주일만 지내다 보면, 자신의 삶만이 유독 팍팍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만약 우리가 거친 폭풍우 한가운데 서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를 나름 확실한 정의를 내려둔다면, 화창한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변함없이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사사로운 일에 마음이 요동질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죽음과 직면한 이의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열네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수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우리가 생의 마지막에 섰을 때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고 산다. 사는게 바쁘면 바쁠수록 마음은 온통 밖으로 향하여 죽음을 생각할 겨를 같은 건 없어진다. 더욱이 젊었을 때는 죽음을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받아들인다. 앞만보고 달리다 보면,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나이를 먹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하고 늘 현실에서 퍼덕거린다.

 

열다섯번째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열여섯번째,결혼을 했더라면.  부부가 혈연관계를 초월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보물을 넣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어차피 할거라면 다음 생애 태어나도 만나고 싶은 천생배필과 결혼하는게 최고일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사람이 내 곁을 지킨다면 그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열일곱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자유와 고독은 한몸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늘어나는 가족 수 만큼 개인이 누릴 자유는 줄어든다. 자녀가 없으면 없는 만큼 편하고 자유로울지모른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느끼는 친밀감은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개인의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어서, 어느 쪽이 옳다 혹은 어느 쪽이 틀리다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 가운데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눈물짓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실리를 따지거나 이해관계를 생각하며 가족을 만드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가족은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운명의 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