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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테크 성공학(김정운)

여가

당당하게 놀아라. 자신감은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준다. '고작이거란 말인가? 죽는게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토마스만의 단편 <토니오 크뢰거>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것이 어쨋단 말인가?' 크뢰거의 이런 허무 질문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도 계속된다. “나는 지금 이 여인을 죽도록 사랑한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쨋단 말인가? 사랑이 고작 이런 건가?” 크뢰거는 인생에 대해 더 이상 기대가 없다. 죽을 때도 이 허무한 물음은 계속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죽어가고 있다. 잠시 후면 인생이 끝난다. 그런데 인생이 고작 이런건가?” 크뢰거의 이 같은 허무 질문은 이 땅의 중년들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퇴근하면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반긴다. 최대한 절약하고 나름대로 세운 재테크 전략으로 서른평짜리 아파트도 장만했다. 이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짧은 내리막길이다. 가끔 묻는다. ‘이렇게 살다 가는구나...’ 

 

‘토니어 크뢰거 증후군’은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일종의 허무 우울증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이제는 그 목표마저 잊어버린듯 하다. ‘고작 이거였단 말인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비록 그 과정은 다를지라도 결국 원하는건 행복한 삶이다. 어쩌다 보니 지금의 상황까지 흘러왔지만 누군가 당신을 건져주겠다며 손이라도 내민다면 그걸 잡고 싶을 것이다. 상황이 절망적이고 외로울수록 누구나 날 구헤주길 기다린다. 그렇지만 그 손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내밀어야 하는 손이다. 누구도 당신을 구해줄 순 없다.

 

우선 '여가'의 역사적 어원부터 살펴보자. 희랍어로 여가는 스콜레(SCOLE)라고한다. 이는 나중에 학교 (SCHOOL)나 학자 (SCHOLAR)의 어원이 되는데, 교양을 쌓고 자기 수양을 쌓는다는 의미다. 즉 스포츠, 독서, 토론을 통해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희랍의 여가였다. 이러한 여가 개념에 재미라는 요소가 가미된 것은 로마시대부터이다. 로마 말기에 이를수록 여가의 성격이 자기 수양적 요소는 빠지고, 쾌락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콜로세움에서는 사자와 호랑이가 이교도를 잡아먹는 온갖 잔혹한 경기가 펼쳐지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은행 비밀번호를 정할 때 전화번호나 가족생일 등을 활용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만들어내는 ‘나’와 이러한 비밀번호를 정하면 내가 잘 생각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나’가 있는 것이다. 이 능력이 자기반성의 기초가 되는 메타코그니션(심리학에서 자기반성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이 자기 반성능력은  남을 배려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내면화된 것이다. 즉 남을 잘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자가 자신도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가시간을 가치있게 보내기 위해 재미와 더불어 자기반성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나와 또 다른 '나'사이에 균형 잡힌 관계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생활에서 두개의 '나'사이의 균형은 아주 쉽게 깨어진다. 아주 이기적이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남의 눈치를 살펴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일년에 한두번쯤 조용한 곳, 아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나를 좀 더 잘 볼 수 있다. 일상과는 아주 낯선 경험을 통해 이 경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논다는 것은 그저 웃고 즐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며,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여가를 통해 인간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겠지만, 여가가 주는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속박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어렵게 얻은 자유를 반납하게 될지 모른다. 무작정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해체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우리 보다 앞서 주 40시간 노동제를를 실시했던 독일의 경우, 그 사이 25세부터 49세 사이의 독신인구가 2배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왜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독신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일까?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결혼해서 가족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자기 삶에 투자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아이와 배우자에 대한 의무로 어쩔줄 몰라하는 결혼생활보다는 떠나고 싶을 때 마음대로 떠날수 있는 독신의 삶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이다. 산을 오르고 자동차를 색다르게 튜닝하여 폼나게 드라이브 하며, 즐길수 있는 주말의 삶에 가족은 그저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이혼율 또한 높아진다. 넘쳐나는 여가시간은 가족의 행복을 배가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숨겨져있던 갈등을 표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남자들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분명히 즐거울 것이다. 그러기에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다.  2박3일 가족 나들이는 최소한 40-50만원 비용이 든다. 결국 대부분의 주말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 여보 좀 일어나봐, 오늘 약속없어?" (제발좀 나가지, 점심하기 귀찮은데...) "응 없어. ""오늘 누구 만난다고 안했나?"( 눈치가 없어 눈치가) "다음으로 미루었어. 점심때 수제비나 끊여먹을까? ""더운데 웬 수제비, 아침에 먹던거 그냥 먹지"(주말 마다 뭐 해달라는 게 그리 많아)

 

 한국의 출산율 저하는 이미 세계 1등이다. 아이의 출산율이 떨어지다보니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속도 역시 가속화 된다. 고령화 사회란 65세 이상의 인구비율이 7%가 넘어서는 사회를 말하는데 14%가 넘어서면 고령 사회라고 정의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이다. 여가사회의 부정적 지표들은 이혼율 증가, 출산율감소, 결혼율 감소,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다. 휴일이 늘어나면 모두 행복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놀라고 하면 모두 잘놀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착각이다. 여가는 숙면에서 시작된다. 숙면을 위해서 잠자기 전에 오늘 나는 무엇을 잘못했나 반성할게 아니라, 내가 오늘 잘한 일이 무엇인가를 되짚어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것이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