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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테크 성공학(김정운)

왜 쉬지 못하느냐고?

대다수 중년남성들이 겪고 있는 소통불능의 원인을 살펴보면, 놀이 부재 외에도 일중독 신화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또 하나 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사회가 오랫동안 맹신하고 찬양해 왔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제신문의 인물기사를 한번 보라.  온통일에 중독된 사람아니면 강박증 환자들의 삶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다. 주어진 과업을 수십배 초과 달성한 노동 영웅을 찬양하는 북한의 천리마운동이나 새벽별 보기 운동을 비웃을 일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중독 양상은 그들보다 조금 세련된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일중독에 빠지면 삶을 즐길수 있는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 일 중독자는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때때로 쉬면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생각해야한다. 휴식은 대나무에 비유하면 마디에 해당한다.  마디가 있어야만 대나무가 자랄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기업도 중간 중간에 쉬어야 강하고 곧게 성장 할 수 있다" 일본 자동차 혼다 창업자 혼다쇼이치로가 남긴 말이다. 우리는 '왜 놀아도 될까?' 하는 물음에 '그래' 라고 대답을 선뜻 못하는 걸까?  일 중심의 사회분위기는 사람들에게 휴식에 대한 막연한 죄의식을 갖게 했다.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하나라도 더 배워야해' '아무것도 하지않고 시간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야' 라는강박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개미 콤플렉스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잘 쉬고 잘 놀아야한다. 경쟁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창의력은 휴식과 놀이를 통해 개발된다. 현재 정말 필요한 것은 정보 자체보다는 잡다한 정보더미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 조합하는 능력, 즉 다양한 관점에서 정보를 재창조하는 능력이다. 즉 기존 정보를 새롭게 엮어 재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다. 지식기반 사회, 정보화 사회라는 21세기에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의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진부한 것과 새로운 것으로 나누어진다. 정보와 정보가 연결되는 맥락을 이해해야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하면 부담부터 느끼고 ,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어차피 걸어갈거 아니면 명절날 부산을 가나 비행기로 파리를 가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에게 여행의 부담은 그 정도입니다. 돈문제가 남는데 사람들이 정말 돈이 없어 못가느냐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마음속 거리가 멀어서 그런거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냥 떠나는 겁니다. 돈 몇 푼아껴서 나중에 노후 보상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보다 여행가서 얻어오는게 훨씬 많으니까요. 일 따로 노는거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즐겁고 싶으면 내가 좋아하는걸 하면 되죠. 여행을 가든, 잠을 자든, 노래를 부르든 말입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어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워야 했던 시절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는 사치스런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먹고 살만한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못쉬고 힘들어 하는가?  계속 이렇게 살다가 어영부영 마음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이 밀려온다. 한발만 뒤쳐져도 영원히 낙오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직 살기위해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 뒤늦게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에 가족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유명하다는 관광지에도 가서 열심히 사진도 찍어 보지만 그것도 한두번이다. 스테이크 먹는거나 하루 세끼 밥 먹는 거나 별반 다를게 없다. 사진도 그렇지만 놀러가서 남아야 될 것은 다른 세상을 직접보고 느낀 것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린 도대체 왜 이리 못쉬는걸까?  한국의 남성들이 제대로 못쉬는 이유는 '논다'는 것에 대한 편견, 사회적 관습, 물질 만능주의로 얼룩진 약육강식의 사회 등 다양하다. 하지만 문화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남성의 문제는 '충격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과 '학습된 무기력'으로 정리될 수 있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라면 거품을 무는 것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충격적인 경험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족의 죽음이나 고통스러웠던 질병, 사고 등등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내게 생겼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사건들을 계속해서 얘기하고 또 얘기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현상은 그 의미가 스스로 정리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를 '충격후 스트레스 장애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땅의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군대는 처음 경험하는 사회다.  한국 남자가 처음 경험하는 사회가 군대라는 사실은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군대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 즉 전쟁을 준비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에서의 첫 사회경험은 한국 남성들의 조직행동 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회사를 비릇한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문화가 군대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 가끔 있는 회사의 회식 또한 군대의 추억을 확인하는 자리다.

 

충격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과 함께 한국 남성이 재미를 모르고 살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꼽을수 있다. 한마디로 놀아야 할때 제대로 놀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들이 개의 다리를 그물사이에 넣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전기로 고문하였다.  개는 고통스러운 자극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다리가 묶여서 어쩔수 없었다. 전기고문은 계속 되었고 몸부림도 그만큼 처절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개는 더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전기고문은 계속되었지만 개는 더 이상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그 개가 배운 것은 무기력이었던 것이다.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질병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무서운 질병이다. 도망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개의 무기력한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훌쩍 떠나보려고 하나 막상 길을 나서려는 사람은 어디로 갈지 몰라 당황한다. 결국 아무 생각없이 모두가 가는 곳으로 차를 돌린다. 그 대열의 맨 앞에 어디로 가야할지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은 식당과 사람들만 우글거릴 뿐이다. 달리 할 일도 없다. 그저 남들이 하는대로 먹고 마시고 화투장을 들뿐 이다. 도망갈 수 있어도 도망치지 않는 무기력한 개처럼 어렵게 얻은 자유를 그렇게 탕진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진 규칙에 따라 생활한다. 문제는 욕구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시간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 저녁 시간이라는 일정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식사를 한다. 결국 시계가 자는 것, 먹는 것 같은 생물학적 욕구를 지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고, 시간에 맞춰진 규칙에 따라 먹고 자야하는가?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야했던 우리 조상은 기다림에 익숙했다.  비가 오면 쉬고 바람 불면 또 기다렸다. 기다리면 언젠가 때가 왔다. 자연의 시간은 그 길이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시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시간은 가치의 단위가 된다. 시간이 돈인 사회에서 시간의 가치는 권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의 시간은 보통 사람의 시간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당신이 청와대 만찬에 초대 받았다고 가정하자. 초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자리에 착석한채 주인이 오기를 도리어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시간은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시간이 곧 돈이고, 돈이 곧 행복이라는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행복은 어떤 행위를 한 후에 결과로서 얻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행복은 즐거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담보로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또 없을 것이다. 현재 행복한 사람이 미래에도 행복하다.

 

사실 '젊었을때 고생하면 늙어 행복해진다'는 논리는 도박사의 오류와 큰 차이가 없다. 도박사의 오류란 확률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주사위의 홀수와 짝수로 도박할 경우 5회 연속 홀수가 나오면 6회째 짝수가 나올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다. 그러나 주사위의 홀수와 짝수가 나올 확률이 언제나 50%이기 때문에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 홀 수가 100번 나와도 그 확률은 절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 고생했다고 해서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선 시계에 맞추어진 삶의 규칙에 대해 의문을 가져라. 음식은 시간이 되었다고 먹는게 아니라,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시간이 되면 자는게 아니라 졸리면 자야한다. 이 잘못된 규칙 때문에 비만과 불면증을 겪는 것이다. 시계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과정이다. 지금 당장 행복을 선택하라.  바다가 보고 싶은가?  그럼 지금 당장 강릉행 기차를 타라. 당신의 행복은 절대 미래에 있지 않다.  혹시 현재의 행복을 찾는다고 나섰다가 괜히 미래를 망치게 되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참 걱정도 팔자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당신이 행복을 선택하면 당신의 미래는 당연히 핑크빛이다.  중요한건 지금 이순간 당신이 망설임 없이 선택할 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