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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지음,신승철

기적

놀랍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건이 일상적인 과정을 벗어날 때 또는 자연법칙으로 예측할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이 최악의 환경에 처한 대다수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고 유지시켜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알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어려움 없이 견뎌내는 질환을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이겨내지 못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모른다. 그저 놀랍다는 것 밖에. 심장병이나 뇌졸중, 암, 위궤양 들과 같은 흔한 병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질병을 대해서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최근 병의 상태가 정신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즉 정신이 신체의 저항 체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방어체계가 종종 실패한다는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동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라는게 훨씬 더 놀랍다.

 

평상시에 우리는 박테리아를 산채로 먹고, 발암 물질들에 침해 당하며, 지방질과 혈당 때문에 애를 먹고 산성물질에 침해 당한다. 우리가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주 병에 걸리거나 쉽게 죽지 않는게 더 놀라운 일이다. 여러 가지 정신질환 처럼 육체적 질병에 대해서도 우리는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이세상에는 어떤 미지의 힘이 있어 최악의 상황에서까지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을 지켜주고, 더욱 더 건강해지도록 북돋워 준다는 것이다.

 

전에는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깨닫는다'라는 말을 쓴다. 바로 이 '깨닫는다'는 말은 다시 '안다'는 뜻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새삼스레 알게 된다는 의미다.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밖으로 드러내다' 또는 '앞으로 이끌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누구를 교육한다고 말할 때 말 그대로라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뭔가 새로운 것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뭔가를 꺼집어 내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을 의식의 세계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은 모든 지식의 창고다.

 

영적성장이란 쉬운 길을 가려고 하고 날짜가 지난 지도나 낡은 관행에 집착하려고 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 등을 극복하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가려는 자연저항을 이겨내야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정신 속에서 작용하는 엔트로피의 힘이 성장을 방해하는 것도 이겨내야 한다. 더 이상 어떤 운동도 일어나지 않고 완전 해체되고 미분화된 상태를 '엔트로피'라고 부른다. 엔트로피의 상태를 향하여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 내리는 것을 '엔트로피의 힘'이라고 한다. 게으름은 우리 모든 삶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의 힘'이다. 자기내면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도 일종의 일이다.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논쟁을 벌여보는 것, 즉 심사숙고 해본다는 것은 고통과 투쟁의 길로 들어섬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고통은 회피하고 싶어한다. 우리 모두가 게으른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는 존재한다. 그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어떤 다른 사람보다 덜 게으를지 모르지만, 그것도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성찰해 보면, 자기 속에 게으름이 잠복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게으름은 우리를 끌어내리고,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엔트로피의 힘'이다.

 

게으름은 단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이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따른 두려움, 현재의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잃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항해 싸우는 경향이 있다. 이 저항은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지만, 그 밑바닥에 분명 게으름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할 일 앞에서의 두려움이다. 게으름은 여러가지 핑계로 자기를 합리화한다. 따라서 쉽사리 간파되거나 반성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엔트로피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 악한 사람들이 빛을 싫어하는 이유는 빛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빛과 선량함과 사랑을 파괴한다. 그래서 악이란 게으름의 극한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엔트로피의 힘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힘겨울 수 있다. 엔트로피는 사악한 폭력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악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사회적 권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