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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지음,신승철

영적성장

우리는 '알다' 또는 '앎'이라는 말을 되풀이해 써왔다. 악한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의 개으름을 얼마나 아는가?' 하는 것은 영적 진보를 가늠하는 잣대다.  의식이 발달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가진 지식을 - 이미 무의식은 알고 있는 지식- 인식하는 것이 향상된다는 뜻이다인식이란 의식을 무의식과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우리의 무의식이 바로 神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의 일부분이다. 하느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겉으로 드러난 '의식'이라는 작은 식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튼튼한 뿌리라고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 삶이란 뿌리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식물과도 같다. 진정한 삶의 뿌리속에 감추어져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땅위에 나타난 부분은 한 여름만을 겨우 지탱한다. 그리고는 시들어 버린다. 하루 살이와도 같이...  우리의 인생과 문명의 끊임없는 흥망성쇠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절대허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영속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느낌을 나는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꽃뿐이고 꽃은 곧 시든다. 그러나 뿌리는 남아 있다."  (융)

 

사람들은 대부분 대개의 순간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며, 어떤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동기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 채, 또는 자기선택의 결과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행동에 들어간다.영적성장의 길은 평생 걸리는 배움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열심히 가다보면 지식의 편린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점차적으로 사물이 의미심장해진다. 막다른 골목과 실망스러운 순간과 폐기해야 할 관념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점차 우리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이 하는 일이 실제로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게된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성숙한 사람은 인생의 전문가다. 많은 것을 알수록 결정을 내리는 일이 복잡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알면 알수록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쉬워진다. 때로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행위이며,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책일 수 있다. 물론 다른 경우 재난이요, 파괴적일 수 있겠지만. ...........

 

정치적 권력이란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타인들을 강요하여, 어느 누군가의 의지에 따르도록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어떤 지위에 귀속된다. 왕위라든가 대통령 또는 돈에 귀속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지위에 올라 있거나, 돈을 소유한 사람에게 권력이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노이로제는 마땅히 치러야 할 고통을 회피하려는데서 온다. 건전한 정신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무릅쓰고 진실에 충실하고자 한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세계의 실체를 가능한 한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의 실상과 또 우리 자신이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 양상은 고통스러운 것일 때가 많다. 우리는 이것을 수용하고 인내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불쾌한 사실들을 우리 의식밖으로 몰아냄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한다. 게으름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가 인식을 방어한다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실제와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적어도 이점에서 정치적 권력과 영적 권력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 영적진보의 정점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은 정치권력의 정상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다. 자기위에 책임을 전가할 사람이나 비난할 사람도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줄 사람도 없다. 자신의 고뇌와 책임을 함께 나눌만한 수준의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자기주변에서 자기와 대등할 정도의 이해력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부모나 사회 또는 운명 등이 우리를 억압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우리의 지금 상태를 대신 책임져줄 윗사람을 필요로한다. 우리 자신외 탓할 사람이 없는 그런 권력의 정상에 올라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을 지닌데서 오는 고독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인생이라고 하는 배의 고독한 선장이 되기보다는 책임감 없는 상태를 선택하려고 한다.

 

누구나 사랑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사랑받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며 또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랑받고자 노력한다고해서-사랑받고자 원한다고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때 우리는 오히려 의존적이 되고, 거머리 같이 되어 진정으로 사랑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보답받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없이 자신과 타인을 보살핀다면, 우리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또 굳이 구하려 하지않았던 사랑의 보답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것이다.

 

수동성과 의존성 그리고 두려움과 게으름 때문에 가야할 길의 전부를 미리 보기 원하며, 그 한걸음 한걸음이 안전하고 가치있다는 것을 미리 보장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 하다. 영적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 생각과 행동에서의 독립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말이나 은총의 도움이 얼마간 힘은 되겠지만, 그 길은 반드시 혼자가야할 길이다. 그 길로 데려가줄 스승은 없다. 확고한 공식도 없다. 어떤 말로도 어떤 가르침으로도 영적인 순례자가, 자신의 길을 택하여 노력하고 고뇌하면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자기 삶의 고유한 환경을 극복하며 나아가야할 필요성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더라도, 영적 성장을 향해 가는 여행은 너무나 외롭고 어려워서 우리는 종종 의기소침해 진다.


끝없는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과학은 우리 자신이 자기의지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힘의 지배를 받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존제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내면적으로는 이해할 수 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심리적 화학적 힘에 의해 좌우되는 '우리'라는 존재가 개체로서든 종족으로서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도 대부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복잡한 심리적 매카니즘을 갖고 있으며, 개인마다 과거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의 상호교차로 인해 결국 각자의 인생에서 사랑스럽거나 창조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어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