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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지음,신승철

행동하는 것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양 섭취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만족과 행복을 갈망한다. 그러나 성장과 그에 수반되는 불행과 고독 그리고 고통을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의존할 상대인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이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곁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군인들 중에는 아내에게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소망 그리고 목적을 주입시켜, 애완동물을 데리고 느끼는 것에 가까운 것을 가지기를 바란다. 아내가 자신을 애완동물로 취급하는 남편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남성에게 사랑이란 아내가 애완동물이란데서 생겨난 것이므로, 아내의 힘이나 독립성이나 개성등을 존중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수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단지 자신의 아이로서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여자들은 우리 주위의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아이가 두 살이 되기까지는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지 모르겠다. 무한정 부드럽게 기쁨으로 간난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감싸안아주고, 같이 놀고, 계속적으로 애정을 쏟고, 전적으로 아기를 돌보아 주는데 헌신하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기쁨을 갖는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상황이 돌변한다. 아이가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시작하자마자- 말도 안듣고, 칭얼거리고, 놀기, 거절하고, 안아주는 것도 싫다고 하고, 어머니외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며 자기마음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어머니의 사랑은 중단된다. 어머니는 아기에 대해 흥미를 잃고 그냥 내버려두며 아기를 단지 귀찮은 존재로 생각한다. 그 무렵 어머니는 가끔 있는 일이지만 다시 임신하고픈 욕구를 느낀다. 이것은 또 다른 아기, 또 다른 애완동물을 얻기 위해서이다.

 

갓난 아이나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이나, 의존적 복종적 부부사이의 사랑도 모두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본능적 행동은 모성본능 또는 부모로서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에 빠지는 본능과 비슷한 것이다. 이 사랑은 상대적으로 노력을 별로 들이지 않고 전적으로 의지에 따르거나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육이란 단순히 먹여주는 것 이상이라야 한다. 정신적 성장을 길러주는 것은 어떠한 본능적 행동으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이다. 학교에 직접 운전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옴으로써 어머니는 아들을 열심히 기르고 있는 것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아들에게 불필요한 행위다. 때론 아들의 정신적 성장을 촉구시키기보다 퇴보시킬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있게 칭찬하고 지각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지각이 있다'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분별없이 주기만 하는 파괴적인 양육의 이면에는 많은 동기가 숨어있다. 그러니 거기에는 분명히 공통적인 근본 원인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주는자는 받는자의 정신적 요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깨어있는 동안 가족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뼈빠지게 일해서 아내와 자식들의 욕구를 채워주려 애쓴다. 두 아이에게 차를 사주고 마누라를 위해 가기 싫은 오페라도 가고,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청소도 한다. “당신은 밤낮 그들을 위해 자신을 그렇게 내동댕이 치는데 지겹지 않습니까?” "그럼,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내버려 두기에 동정심이 너무 많아서요. 나는 그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어야 하고 방관할 수 없습니다. "

 

그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완전히 뱌쳐야 하는 복합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즉 그의 머리와 마음이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적당한 때 주지 않는 것이 적당치 않는 때 주는 것보다 더 안정을 베푸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야한다. 또한 독립성을 길러주는 것이 돌보는 것보다 더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도 배워야 한다.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욕구와 화나는 점 그리고 분노와 기대치를 표현하는 것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정신건강에 꼭 필요하며, 사랑에는 감싸주고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만큼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희생적인 행동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책임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고 할 때는 우리가 그것을 하기로 선택한 때문이고,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가장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아이들에게 “너는 내가  너를 위해 해준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야한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틀림없이 심각할 정도로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순수하게 사랑할 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자기 희생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확대이다.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 나가는 활동이다.

 

나는 사랑이란 하나의 행동이고, 하나의 활동이라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마지막 그릇된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수 많은 사람이 사랑의 느낌을 소유하고 있고, 그 느낌에 대해 반응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과 거리가 먼 파괴적인 행동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의 느낌은 애착을 수반한다. 애착과정을 통해 하나의 상대가 우리에게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애착을 하게되면, 그 상대를 보통 '사랑의 대상'이라고 부른다. 그 대상은 자신의 일부처럼 에너지가 몰입되고, 자신과 에너지 몰입대상 사이에 애착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잃게 되어, 그 대상으로부터 우리의 투여된 에너지를 빼는 과정을 탈애착, 정신분산이라고 한다. 사랑이 느낌이라고 믿는 오류는 애착과 사랑을 혼돈하기 때문이다.

 

 이 혼돈은 사랑과 애착이 비슷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첫째 우리는 생명이나 영혼의 유무에 관계없이 애착을 한다. 이를 테면 어떤 사람은 주식이나 보물에 애착을 하고 사랑을  느낄지도 모른다. 둘째 우리가 다른 인간을 애착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존적인 사람은 자기가 애착대상인  남편의 정신적 발전을 두려워 한다. 십대 아들을 운전해서 학교에 등하교시키는 엄마는 분명 자기 아들에게 집착했다. 아이 그 자체가 어머니에게는 중요했지만 아이의 정신적 성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셋째로 애착의 강도는 지혜나 책임의식과는 상관없다. 낯선 두 사람이 술짐에서 만나 서로 애정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 순간 그들에게 있어서는 같이 자는 것만이 소중하다. 끝으로 우리의 애착이란 둥둥 떠 있는 것이고, 순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성관계가 끝나자 마자 서로 매력이 없고  원하지도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진정한 사랑은 지혜와 책임이 따른다.

 

건설적인 결혼은 부부간에 자신의 감정이 어떻든,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그리고 예측이 가능하게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사랑에 빠져 결혼한 부부는 조만간에 그 사랑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짝을 찾으려는 인간적인 본능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순수한 사랑이 시작된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는 의지'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적이기보다 의지적인 것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 속에서 사랑한다는 느낌의 증거를 칮는 것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행동 속에서 사랑의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참사랑이란 의지적 행동이며 그것은사랑의 순간적인 느낌이나 단순한 애착의 단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 “ 사랑이란 행동하는 것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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