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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지음,신승철

사랑은

사랑은 '노력'이라고 정의하면서 자신을 확장시킨다고 했다. 쉽게 말해 마음을 넓게 가지고, 좀 더 발전하고자 할 때 우리는 공포에 저항하고 게으름이라는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된다. '노력'이란 마음을 넓게 가지려고 애쓰고, 게으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알지 못하는 마음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공포감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것이 '용기'다. 그렇게 보면 사랑은 일종의 '노력과 용기'다. 특히 사랑은 우리 자신의 발전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성장을 위해 행해지는 노력과 용기다. 

 

현장 관리자 정도의 지위가 되면 읽는데 1시간, 대화에 2시간, 듣는데 8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당면하게 되는 일들이 꼭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잘 듣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듣는 것을 쉽게할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일을 잘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도록 하자는 것이다. 잘듣는다는 것은 관심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무척 힘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했거나 잘들으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노릇을 완수하려면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중에 가장 힘든 것이 아이의 요구에 어떻게 적당한 스타일로 반응하면서 듣고, 안듣는 것을 시의적절 하게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조화롭게 해내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이야기 듣는 시간은 길지 않더라도, 들을 줄 힘이 부족하거나 들어줄 수 없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말 잘들으려면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한다. 첫째로 그것은 완전한 집중을 요구한다. 어떤 사람의 말을 참으로 듣고 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 둘째로 어린아이의 말을 듣는데 요구되는 집중을 위한 노력은 어떤 강사의 강의보다 힘이 든다. 다시말해 여섯 살난 아이의 이야기는 재미없어 집중해서 듣기가 힘들다. 결과적으로 어린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왜 우리는 어린 아이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가? 첫째 당신이 그렇게 관심을 갖는 것이 당신 아이에게 줄수 있는 존종감의 가장 좋은 구체적인 증거이다. 둘째 아이들은 자신이 귀중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귀중한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당신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만큼 행동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셋째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일수록 당신의 아이들이 말하다 쉬고 떠듬거리고, 순진하기 이를데 없는 그 제잘거림 속에서 아이가 참으로 가치있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이의 특수성도 쉽사리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이해의 폭은 점점 더 넓어지게 된다. 넷째 당신이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더욱더 잘 가르칠 수 있다. 끝으로 아이들은 당신이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독특한 점을 이해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꺼이 당신의 말에 순종하고, 당신이 그들을 대했던 것처럼 존경과 사랑으로 대할 것이다. 존중이 존중을 창조하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진정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나' '나의 사회적 위치는 어떠한가' '내가 상대방이나 또는 상대가 말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일시적으로 그것들을 포기하거나 제쳐놓는 그런 훈련이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안으로 들어가 가능한 한 그와 같은 체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감정이입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경험을 연장하고 확대시켜 준다. 우리가 일상속에서도 열심히 들으려고 한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대개는 마음속의 편견이나 아집을 가지고 될수 있는대로 이야기를 짧게 줄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자신을 만족시킬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애쓰는데 불과하다.

 

낭만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노력이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많은 부부들은 낭만에 기대고 낭만만 바라볼 뿐 진정으로 사랑하고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힘든 일을 감내하려하지 않는다. 아이와 모래밭에서 놀아준다든지, 아이가 이야기하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들어준다든지, 부부사이에 서로에게 별로 관련 없는 일이나, 하루 종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을 들어준다듣지하는 것은 때로는 하찮은 일이고 지루하며 힘든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낯선 장소에 있는 것,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보는 경험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대개 익숙한 방식대로 계속 일을 해나가고 싶어한다. 사랑이란 부지런한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으며, 사랑하지 않음은 곧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같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자신을 확대하는 것은 말하자면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다루지만, 그들이 실제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두려움은 불가피한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으로 인한 위협에 그저 저항이나 하는데서 머물지 않고, 뛰쳐나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행동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잡으려면 거기에는 항상 잃어버리거나 거부당할 위험도 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사랑을 거부하고 떠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 보라.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그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든지 믿어보라. 당신은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든 의존해보라. 그가 당신을 실망시킬지 모른다애착은 고통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많은 것을 삶에서 제외시켜야만 할 것이다. 즉 아이를 갖든지, 결혼, 섹스의 황홀감, 야망, 우정 등 인생을 즐기는 것과, 생기있게 하고 의미있게 하고 중요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말이다. 어떤 면으로 성장을 하든, 그것이 고통이 되든 기쁨이 되든 그것은 당신이 치러야할 대가다. 인생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로 만든 한 벌의 투구와 갑옷이다. 성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죽음의 경험을 피하기 위해 항상 변화 없는 생활을 선택하고, 새로운 것 모험이나 도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지금의 생활을 고수 한다. 정당한 괴로움을 피하려는 시도는 모든 심리적 병의 원인이 된다.

 

죽음이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우리의 왼쪽 어깨에 지고 가는 것임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간다면, 죽음이란 우리 삶의 진실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왼쪽 어깨에 짊어진 죽음을 부인하고 당당하게 직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이 주는 지혜로운 교훈을 스스로 버린 결과, 현명한 지식을 가지고 충만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죽음을 피해서 떠나가면 또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외면해 버린다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삶으로 부터도 피해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삶은 그 자체에 무수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랑하고 살면 살수록 더욱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일생동안 셀수도 없이 많은 위험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성장에 따르는 위험이다.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겉으로 성장한 어른으로 보이지만 대다수의 어른들이 심리적으로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있다. 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그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으로부터 전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생에서 있어 유일하게 진정한 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데서 발견되는 것이다. 성장은 단순에 도약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아주 서서히 일어난다. 여러번의 작은 뛰어넘기가 쌓여서 이루어진다. 사랑에는 자신이 확장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우 차원으로 자신을 확장한다는 것은 비참하게 남아있기를 원치않는 것이고, 내 요구에 맞지 않는 모든 사회환경에 처량하게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심리적 독립과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완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 길을 선택해 나가는 사람만이 자유로이 정신적인 성장의 길을 따라 전진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절대적인 자유 선택에 있는 것이지 남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