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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무석)

강박관념, 히스테리,나르시시스트

성격이 강박적인 사람은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청결이다. 집안을 쓸고 따고 얼마나 청결한지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어도 될 정도다. 자기 청결 기준에 도달했을 때 안심되고 자존감이 생긴다. 두 번째 특징은 정리정돈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한다. 세 번째 특징은 시간엄수다.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약속시간보다 항상 먼저 도착한다. 강박성격자는 어떻게 해서든 주도권을 쥐려 한다.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자기는 항상 옳고 신중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무식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본다. 심지어 자기를 파괴하려는 적으로 본다. 그런데 사실은 남을 지배하고 주도하려는 욕심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 아니다. 주도권을 잃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항상 투쟁해야 하고 대인관계에서 비싼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매사에 주도권 쥐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강박 성격자의 자존감은 늘 위협을 받는다.

 

히스테리 성격을 연극적 성격이라고한다. 배우들처럼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인기를 위해 연기하듯이 히스테리 성격자들도 인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 같이 보인다. 히스테리 성격은 여성에게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하여 잘 웃고 잘 울기도 한다. 애교가 넘치고 붙임성도 있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관계의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면 그것으로 끝이다.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히스테리 성격은 인기가 자존감을 유지 시켜준다. '나는 매력적이야.' 이것이 확인될 때 자존감을 느낀다.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모도 예뻐야 하고 인기를 끌어야 한다. 그러나 인기가 떨어졌을 때 자존감이 무너지고 비참한 기분에 빠진다. 정신 분석에서는 히스테리 성격이 되는 이유가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다.남성 히스테리는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 된다. 여자 아이의 경우 아버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히스테리가 된다.

 

자기애적 사랑을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라한다. 우월주의에 빠져있고 특권의식에 차 있다.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주장하고  칭송과 찬사를 기대한다. 소위 공주병이 여기에 속한다. 상대방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냉혹하고 비정하다. 부인이 고열로 신음하며 앓고 있는데 아침 식사를 차려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남편이 이런 성격이다. 나르시시스트의 관심은 오로지 힘, 실력과 성공에만 집중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힘의 논리가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힘겨루기의 전쟁터로 본다. 약자는 죽어야 하고 강자는 영광을 누려야 한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의 주인공 강마에 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이다. 강마에의 매력은 두가지다. 첫째 누구옆 에서도 기 죽지않는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내 뱉어 버린다. 전혀 눈치 보지 않을 뿐더러 상대 입장에 대한 배려도 없다.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태도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의 기분을 살펴가며 말하고, 상대가 아파할 말은 참는다. 이런 능력을 공감능력이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공감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이런 거침없는 태도는 일반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특히 자존감이 낮아서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은 강마에 태도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어떻게 저렇게 용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인간관계는 빈번히 파괴되고, 어느 날 그는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진정으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 버리고 자기의 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그들도 미련없이 자기를 버릴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사회적인 힘을 잃어버리는 노년기에 특히 외로워진다. 강마에 같은 나르시시스트의 두 번째 매력은 논리를 신봉하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논리에 갈채를 보낸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힘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사실 정신분석학에서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이유를 아이러니 하게도 낮은 자존감에서 찾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무의식 속에 '나는 약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남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높은 지위와 힘을 가져야 한다. 내가 힘이 없으면 사람들은 나를 짓밟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권력 있는 자리, 돈, 명예에 집착하는 것이다. 자기가 강해지기 위해서 남의 힘을 착취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 경쟁자들을 제거한다. 그의 주위에 이용당하고 버림 받은 사람들이 많다.

 

힘의 논리는 그럴듯한 논리다. 실력을 쌓으라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힘의 논리는 비정한 철학이다. 사람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철학이다. 이런 철학을 따르면 누군가 승자가 될때, 다른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 자존감을 잃어야 한다.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힘센 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강한 자는 강한 자대로 자존감을 갖고 살지만, 약한 자는 약한 자대로 자존감을 갖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의 자존감은 60억의 다양한 인간 중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이다. 예컨대 자식들의 유일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존감이다. 내 어머니나 아버지가 내게 그렇기 소중한 분인 것처럼, 나도 내 자식에게 그렇게 소중한 어머니이고 아버지인 것이다. 내 친구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