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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무석)

일상에서 행복 할 수 있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우리 사회가 서구화 되고 개인주의화 되면서 왕따현상이 많아졌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스타 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는 보고가 있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스타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이와 관계없이 억울한 피해자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스타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튀고 싶다.' 많은 젊은이들의 소원이다. 그리고 이렇게 스타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가능한 일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생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익 때문에 나를 싫어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지배하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나를 적대시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노예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때까지 나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지구상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자기를 싫어하면 안된다. 심지어 이웃집 강아지까지도 자기를 좋아해야 한다.

 

이제 그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싫어하게 내버려 두자. 상황이 바뀌거나 그이 생각이 달라지면 사과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의 감정은 그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부족하지만 사랑하며 살자. 스타에게는 박수를 보내주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자.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스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스타가 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그것도 인생살이중 일부일 뿐이다. 나는 일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곁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확인하고 세수하고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 오전에 보는 환자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점심은 아래층 식당에서 아내와 함깨 먹는다. 그리고 낮잠 한숨자고 오후에 환자보고 퇴근길에 차 속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고 결국은 일상을 살고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인기의 거품에 속지 말 일이다. 인생에 특별한 별세계가 있을거라는 기대는 거품이다. 거품이 걷히면 실망만 남는다.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으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안정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으면 행복한 일상이다. 나를 믿고 따르는 가족이 있고 매일 몸을 녹일 수 있는 집이 있으면 행복한 일상이다.

 

정말 불행하고 아픈 일을 당했다면 아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 그래, 왜 하필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 였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문제로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겠다” 라고 결심할 필요가 있다. "열등감이 있는 남편과 살면서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남편의 감정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기 기분만 중요하고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한다. 기분이 좋으면 외식을 하다가도, 아이가 투정이라도 부리면 식사도중에 나가버린다. 아이에게 심한 매질을 하기도 한다.  밖에 나가서는 점잖은 사람으로 변했다. 마치 카멜레온 같다. "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쓴다. 남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회사에서 인기가 높다. 여직원들 사이에 결혼하고픈 남성의 모델이다. 아내는 회사 여직원으로부터 '사모님은 행복하시겠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내는 어이없고 씁쓸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잘 걸린다. 의처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사회공포증에도 잘 걸린다. 자존감이 인격이라는 건물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외형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충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진다. 이때 정신질환이 발병한다. 낮은 자존감 문제는 인간의 실존적인 숙제다. 모든 인간의 고통이며 정신질환의 원인이다. 의사가 될 때 마다 반드시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째계명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다. 환자를 만날 때 환자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말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만난다.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하고 존중하고,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환자들은 지나치게 자기비하적이다. 이런 자기 평가방식을 깨닫고 바꾸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과제다. 환자들은 자부심을 느끼는 일을 하고도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을 깍아내린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공포증이 잘 온다. 착하고 완벽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요구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다. 그래서 열등감이 심한 이들이 많다. 사회공포증은 마음에 숨어 있는 아이가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버림 받을까봐’, ‘비난 받을까봐’ ‘무능하다고 무시할까봐’, 겁을 먹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일뿐이야, 너무 잘나 보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어.’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다. 얼굴이 다르듯 성격도 다양하다. 성격은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사람마다 성장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출생순위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장남이나 장녀들은 대체로 부모가 젊었을 때 태어나 자란다. 또한 경쟁자도 없이 부모의 사랑을 독점한다. 장남들은 집안의 장손으로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장남들은 일반적으로 성격이 보수적이고 안정돼 있다. 투쟁하기보다 화해하려 하고 진취적이기보다 현상유지를 원하다. 성공하려고 올인하지도 않는다. 아쉬울게 별로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남의 입장은 다르다. 자식을 한번 길러본 부모이 태도도 달라져 있다. 애지중지 하지도 않고 애들은 다 잘 크게 되어 있다고 방치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이 사랑을 쟁취해야 한다. 형이나 누나에게 쏠려 있는 부모의 사랑 일부라도 얻기 위해 전력투구해야한다. 떼를 쓰든지 애고를 부리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 그래서 차남의 성격은 투쟁적이다. 성공 지향적이고 진취적이다. 항상 변화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늦둥이의 경우는 어떤가? 늦둥이의 부모는 40-50대에 들어서 있다. 20-30대 부모와는 다르다. 이미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어 보았다. 출세를 위해 동분서주 하던 시절도 지나갔다. 이제 사회적 위치도, 경제적 위치도 안정을 찾았다. 중년기에 와있기 때문에 죽음도 생각한다. 이 시기에, 부모는 젊을 때 아이를 낳았을 때와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늦둥이는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 이렇게 성격은 다양하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성격은 ‘한사람의 독특한 행동 패턴’을 말한다. 늦는 사람은 항상 늦다. 빨리 와서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기다린다. 유난히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는 성격이 있다. 이를 자학적 성격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열등감이 심하다. 정신분석 용어를 빌린다면 초자아 기능이 너무 가학적이고 처벌적이기 때문에 이런 성격이 된다. 초자아는 자신을 평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초자아는 도덕적 기준을 제시한다. 죄를 짓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초자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초자아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 평소에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쉽게 받는 사람들이 여기에 잘 빠진다. 남의 비난을 듣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다. 예의 바르고 약속을 잘 지키고, 희생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다. 자학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희생적인 생활을 한다. 가족은 끼니를 굶고 있는데도 월급을 고아원에 기부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