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 좁은 집에 아들딸네가 오고, 손자 손녀가 설치니 할배가 갈 곳이 없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 홀로 생각에 잠긴다. 지금의 내 삶을 생각한다.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게 살지는 못해도 지루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영감 할멈 금슬 좋게 살지는 못해도, 그냥 때가 되며 밥 먹고 밤이 되면 자고 덤덤하게 살아간다. 해외여행으로 세상 좋은 구경은 하지는 못해도 주말이면 산을 찾아 나름 자연을 즐긴다. 좋은 집은 아니어도 비바람 막아주고, 한 겨울 따뜻하게 그럭저럭 지낼 만 하다. 아들딸이 똑똑하고 잘난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짝을 만나 아들딸 낳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다만 나이 칠십에 할멈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 어찌 감수하지 못하겠는가? 노년에 삼시세끼 챙겨주고 빨래하고 집안일 알아서 다하니, 할멈이 그만한 위세를 부릴 수밖에. 제발 아프지만 마라.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만 이 세상에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면 된다.
감흥感興- 백거이白居易
吉凶禍福有來由
길흉화복유래유
但要深知不要憂
단요심지불요우。
只見火光燒潤屋
지견화광소윤옥
不聞風浪覆虛舟
불문풍랑복허주。
名為公器無多取
명위공기무다취
利是身災合少求
이시신재합소구。
雖異匏瓜難不食
수리포과난불식
大都食足早宜休
대도식족조의휴。
길흉화복은 까닭이 있어 따라 오느니
깊이 그 까닭을 살필지언정 근심하지는 말라.
불길이 부유한 집을 태우는 것은 보았어도
풍랑이 빈 배를 뒤집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네.
명예란 공공의 것이니 많이 취하지 말며
이익은 내 몸의 재앙이나 조금만 구해야 한다.
사람은 비록 표주박과 달라서 먹지 않고 살수는 없지만
적당히 배부르면 일찌감치 그만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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