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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功遂身退 天之道也

우리 동네 폭설이 내리던 날 성복천을 따라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언제 이런 설경을 볼 수 있겠는가?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지만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인적이 드문 적막한 풍경을 홀로 즐긴다. 우산 속에서 하하 호호 깔깔거리는 연인들은 즐겁기만 하다. 가까이 다가오니 할매 할배다. 참 정겹고 부럽다.
 
지난 20년 동안 일상에서 항상 화두로 삼은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먼저 생존해야 하니 먹고 살아야 하고, 그리고 의미 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젊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가야 하니 생존에 더 무게를 두지만, 나이 들어 어느 정도 사회에 정착하게 되면,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이 들어 죽음이 보이면 하루하루 성찰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곁에 두고 읽는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내용 중에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제9장이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揣而銳之 不可長保
추이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이교 자유기구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수신퇴 천지도야
 
가득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두드려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전할 수 없고,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귀를 지녔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이것을 쉽게 잘 설명하는 글이 ‘홍루몽’의 '호료가好了歌'다. 다음 글은 호료가 주석 내용이다.
 
“누추한 집이어도 한때는 호화로운 저택이었고,
시든 풀과 마른 버드나무만 남은 황량한 폐허지만 한때는 풍악소리가 울렸도다.
들보에는 거미줄이 가득하고 화려한 천은 쪽창의 가리개로 전락하였구나.
지분 향기 풍기는 꽃 같은 얼굴이었건만, 어느새 양 귀밑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렸도다.
어제는 황토에 백골을 묻더니 오늘 밤에는 즐거운 원앙새 한 쌍,
금은보화 그득했던 부자도 한 번 실수에 거지가 되면 매몰차게 변하는 세상이다.
타인이 죽었다고 슬퍼 탄식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친 죽음은 알아차리지 못하네.
자식을 훈계로 가르쳐도 탕자가 안 된다는 보장이 없고,
좋은 신랑 얻었다고 해서 화류가의 기생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큰 감투 쓰려다가 발목에 쇠고랑 차기 일쑤로다.
어제는 누더기 입고 벌벌 떨더니, 오늘은 비단 옷 입고도 성에 안 찬다네.
세상만사 흥망성쇠란 이렇듯 뒤죽박죽이니 타향이 고향이나 다름없다네.
야속하여라. 지금에 와서 보니 이제껏 남 좋은 일만 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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