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내 역할이 없어지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나이가 들면 역할이 하나씩 사라진다. 사회는 물론 가족 내에서도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보호대상이 된다. 내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요즘 내 일상에서 ‘뭔가 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생각해 보면 아침 산책을 마쳤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과 놀 때, 손자와 놀고 손자를 등하원 시킬 때, 주말 산행을 했을 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깨달음이 있을 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을 때,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때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직 내 역할이 많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살지 막막한 너에게
내 아이가 특별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냥 보통사람으로 평범하게 살도록 해라. 그게 행복이다. 자존감 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줘라. 인간은 유혹에 약하다. 특별히 돈이 많고 권력이 있으면 그때부터 대부분의 인간은 상하기 쉽고 망상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 곳에 인간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다.
나는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책을 읽는다. 좋은 내용이 나오면 감동한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탄천을 걷는다. 요즘은 물안개, 단풍을 즐기고 철봉에도 매달려보고 노인 운동기구로 근육운동을 한다. 아침을 먹고 유튜브로 관심 있는 강의를 듣고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본다. 요즘은 도올 선생님의 계사전에 빠져있다. 그러다 졸리면 30분 정도 낮잠을 즐긴다.
아이들과 놀기 위해 성복천을 걸어 학교로 간다. 가끔은 김밥을 싸가지고 근처 소공원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 홀로 점심을 즐긴다. 학교에서 3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카드게임도 하고, 숨은 그림 찾기, 낱말퀴즈, 스도쿠도 한다. 양말목이나 미니블록, 고무밴드 등으로 아이들이 만드는 것들 도와준다. 아이들 친구가 되어 유치한 이야기도 진지한 이야기도 들어준다. 다시 성복천을 따라 집으로 간다. 일주일에 두 번은 손자가 아린이집에서 하원하여 학교로 마중을 나온다.
손자와 근처 공원이나 하천, 시골마을로 간다. 손자는 꽃, 나무, 풀, 열매, 하늘, 물, 채소, 과일, 자동차 등을 좋아한다. 손자는 쉴 새 없이 묻는다. 지나가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동차든 눈에 보이는 대로 무엇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무얼 하는지 묻는다. 때로는 나에게 가르쳐준다. 어두워져도 손자는 집으로 가려하지 않는다. 인내하며 손자의 친구, 도우미가 되어 주려 애쓴다. 겨우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가끔은 책을 읽어주고 목욕을 시키고 나면, 딸과 사위가 데리러 온다. 8시가 넘었다. 머리는 멍하고 몸은 녹초가 된다.
가끔은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예전에 찍은 사진을 정리하기도 하고, TV로 스포츠나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눈이 감겨서 30분을 넘기지 못한다. 또 한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잠이다. 졸리면 무조건 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다.
"... 모든 사람은 결국 일상을 살고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인기의 거품에 속지 말 일이다. 인생에 특별한 별세계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품이다. 거품이 걷히면 실망만 남는다.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으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으면 행복한 일상이다. 나를 믿고 따르는 가족이 있고, 매일 몸을 녹일 수 있는 집이 있으면 행복한 일상이다... "(이무석 ‘자존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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