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인생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은 부모와 교사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배운 지식의 가치와 이를 가르치는 올바른 방법은 이 목적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자녀를 시민 신분과 사회에 걸 맞는 사람으로 기르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부모, 어른의 행위를 위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부모의 역할, 지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모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계를 꾸리려면 준비가 필요하지만, 한 사회의 어른이 되고 자녀를 기르는 데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모두들 자부하는 모양이다. 우리 삶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책임 즉, 가정을 세우고 가꾸는 일을 위해서 단 한 시간도 쓰는 법이 없다. 너무 쉬워서 그런가? 그렇지도 않다. 어른이 감당해야 할 본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가정을 이루고 가꾸는 일이다.
모든 주제를 전부 포함하여 인간의 교육이 완성해야 할 주제는 바로 양육의 이론과 실제다. 적절히 준비하지 않으면 자녀를 바르게 키울 수 없다. 대개의 경우 부모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처신한다.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심사숙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부모는 시시각각으로 소신을 달리 하며 자신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주문을 할 것이다.
아이에게 이 물체가 무엇이라는 지식보다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말을 트기 전에 습득하는 사물의 지식이 모두 스스로 깨우친 거라는 사실은 아이의 일상을 조금만 관찰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외양에서 연상되는 강도 및 무게,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양과 색깔, 특정 동물이 내는 독특한 소리는 대부분 아이가 몸소 관찰한 현상이다. 성인이 되면 주변에 교사가 없어도 일상의 길잡이가 되는 관찰과 추리는 누구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며, 인생의 성공은 관찰과 추리의 깊이와 완성도에 좌우될 것이다. 서현이가 눈에 들어온 신기한 대상을 묘사할 때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말을 쏟아내는지 들어보라, 물론 아이는 이에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럴 것이다. 교육과정을 아이의 지적 본능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부모나 교사가 주입하는 지식은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익히고자 하는 본능적 지적욕구에 의한 자연적인 학습과정을 체계화하고, 아이가 대상에 대해 들려주는 말을 귀담아 듣고, 아기가 떠올리는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이가 관심 갖는 새로운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대상과 연결하여 설명하며, 아이가 성취감에 기뻐할 때 엄마는 잘했다며 맞장구를 쳐주면 된다. 아이라면 누구나 체험으로 뭔가를 발견할 때 희열을 느끼게 마련이다. 지각이 발달할 때 대상을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설정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크게 향상된다. 부모는 자율적인 과정에 순응, 즉 아이 스스로 행하는 자기발달을 도울 뿐이다. 아동의 자연스러운 본능적 행동이 자기발달을 촉진시킨다. 부모가 추진한 교육과정에서 관찰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실물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교육은 아이에게 뭔가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관찰하는 요령을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관찰한 지식을 단지 수용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성취감에서 비롯되는 쾌감을 빼앗고 매력적인 지식을 정형화 된 수업으로 주입하는교육은 공부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증을 조장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는 자연의 안내를 외면하고 있다. 신기한 꽃을 꺾고 곤충을 관찰하고, 하천이나 바닷가에서 조약돌과 조개를 모으는 아이가 느끼는 쾌감보다 더 큰 희열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가 현장에서 지식을 배우도록 돕고. 유년기 동안 그 과정을 장려하는 것이 아이 스스로 장래를 위한 공부의 원재료를 비축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한다.
관심이 가는 실물을 표현하려는 본능을 끊임없이 장려해야 한다. 자주 쓰이는 대상에 일단 관심이 가면 아이는 그것도 종이에 담으려 할 것이고, 모양새가 엉망이고 색깔이 실물과 맞지 않고, 채색이 서툴더라도 장려해야 한다. 핵심은 아이가 훌륭한 작품을 그려내느냐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급속도로 악화된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경제적인 문제가 그 무엇보다 최우선시 되는 가운데, 부모-자식간의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형성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렇듯 경제적 압박이 부모 역할을 뒤흔들고 아이들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가혹하게 인류문화 전달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지난 몇 십년사이에 세계경제는 전통적인 가정과 공동체 연결망을 뒤흔들면서 상황을 불안한 방향으로 끌어왔다. 그 결과 우리는 미숙함, 문화적 소외, 학습수준의 저하, 약물사용, 공격성과 왕따, 아동폭력의 증가라는 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 혹은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라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사람처럼 보일지, 어떤 가치에 의지할지, 어떤 문화를 받아들일지, 어떤 행동양식을 채택할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서로를 따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또래지향성’이라 한다. 부모가 부모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아이들은 반드시 부모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금의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들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잃어버리고 있다. 이것은 부모가 양육기술이나 관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곤 한다. 아이가 함께 있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면,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근원적인 구조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애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애착관계를 단단히 지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의 형성이 절실하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관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아이를 잘 키우고 가르치는 비법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들과이 모든 상호작용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존중하는 데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부모의 의미는 쇠퇴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부모의 역할을 신성시하는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현대 부모로써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문제가 왜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자각을 통하여 강압이나 인위적인 위엄으로 아이들의 협조나 순종, 존경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살피는 힘을 가진 어른으로서 관계에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권리와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립적이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발달해 나가느냐 마느냐는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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