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과 세계의 무사들
고려는 호족이 세운 국가였다. 우리가 잘 아는 왕건은 호족 대표였다. 하지만 왕건은 전국의 호족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고려가 안정기에 들어선 것은 네 번째 왕 광종이 실시한 개혁조치를 통해서였다. 당시 호족 세력은 노비로 이루어진 개인 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때 광종이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다시 양인으로 돌려놓았다. 호족들은 군사적 기반을 잃었고 그제야 하는 수 없이 고려의 신하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기반이었던 출신지역을 떠나 수도 개경으로 가서 귀족으로 변신했다. 이들은 왕족과 혼인을 맺거나 귀족끼리 결혼하는 식으로 가문을 이어갔다. 이들을 문벌귀족이라 부른다. 문벌귀족은 특권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음서와 공음전이 대표적이었다. 음서란 아버지가 5품 이상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아들도 자동으로 관리가 되는 제도였다. 공음전이란 5품 이상의 귀족에게 공짜로 주는 땅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귀족이면 자식도 대를 이어 귀족이 되었다. 그러나 특권을 대물림하는 문벌귀족사회는 부패하기 시작했다.
고려시대 과거시험에는 무과가 없었다. 그래서 문신들은 무신을 업신여겼다. 무신들을 문신들 경호원쯤으로 여겼다. 이런 차별 때문에 무신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 바로 무신정변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정권을 잡겠다고 피를 흘렸다. 죽고 죽이는 혼란이 계속되었다. 무신정권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최충헌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였다. 무신집권기에도 왕은 있었지만 나라의 중요한 일은 무신 집권자의 손에서 결정되었다. 자기 뜻대로 왕을 교체할 만큼 권력이 강했다. 무신이 득세한 고려시대와 때를 같이하여 유럽과 일본에서도 무사들이 권력을 차지하거나 나누어 갖는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의 기사와 일본의 사무라이가 바로 중세의 무인 권력자들이었다. 외국의 무사권력은 고려의 무신정권도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고려에서는 권력이 문신이 손에서 무신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중앙집권적 체제는 변함이 없었다. 반면 유럽과 일본에서는 무사들이 각 지방을 차지해서 권력을 나누어 갖는 지방분권 체제가 나타났다.
유럽에서 중세의 문이 열린 것은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게르만족은 서유럽에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이 9세기 말에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로 갈라져서 지금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이 무렵 서유럽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프랑크왕국은 분열되고 아래쪽은 이슬람세력이 공격해오고 위쪽에서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바이킹이 쳐들어왔다. 이런 혼란기에 중앙정부는 백성을 보호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각 지방의 세력가들이 스스로 무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력을 다진 지방 세력가들은 싸움을 직업으로 하는 전사계급이 되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중세기사다. 이들 전사계급 중에는 세력이 큰 전사도 있고 그에 비해 힘이 없는 전사도 있었다. 세력이 약한 전사는 세력이 강한 전사들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강한 전사는 그 대가로 약한 전사에게 토지를 선물했다. 힘센 전사와 약한 전사도 각자 자기 땅을 소유하고 다스렸다. 물론 왕처럼 힘센 전사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약한 전사는 적은 토지를 소유했다. 이 토지를 ‘장원’이라고 하고 장원의 우두머리 전사를 ‘영주’라고 불렀다.
일본은 4세기경 야마토정권부터 점차 통일국가의 모습을 띠어갔다. 7세기 중엽에는 중국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다이카 개신을 실시했다. 일본은 이 개혁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를 다지고 번영을 누렸다. 10세기경부터 왕권이 점차 약해지고 사회가 흔들렸다. 유럽에서처럼 각 지방의 귀족, 호족들이 각자 소유지를 넓혀 장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장원을 지키기 위해 무사들을 키웠다. 이후 무사들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정했다. 드디어 1192년 미나모토 요리모토라는 힘센 무사가 전국의 귀족과 무사를 제압하고, 가마쿠라막부를 열었다. 이후 700년간 일본에는 막부 시대가 이어졌다. 이때도 왕은 있었지만, 사실상의 통치권은 가장 힘센 장군인 쇼군에게 있었다.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처럼 쇼군은 무사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무사들은 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가 바로 이 무사들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무신정권이 등장하는 것은 12세기 후반이었다. 서양에서는 10세기 무렵부터 전사계급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조금 늦은 12세기 말레 무사시대가 열렸다. 이처럼 여러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무사가 사회의 지배층이 되었으니 그 지속기간이 지역마다 다르다. 고려 무신정권은 100년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600여년, 일본에서는 7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또한 고려 무신정치는 유럽이나 일본 같은 지방분권상태 형태가 아니라 중앙집권 체제였다. 토지를 주고받은 관계로 맺어지는 무사들 간의 주종관계도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조선 시대의 문신 정치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자주국 고려와 세계 제국 원元
아시아 북부 초원지대에는 일찍부터 여러 유목민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고려시대만 헤아려도 거란, 여진, 몽고족 등의 유목민족이 있었다. 기원전 3세기에는 흉노족, 6세기 무렵에는 돌궐족, 8세기 무렵에는 위구르족 등도 있었다. 유목민은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면서 천막을 치고 생활한다. 이들은 소, 양, 말 등 가축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음식과 옷, 주택의 재료도 모두 가축으로부터 얻는다. 때때로 농경민과 교역을 해서 부족한 의식주를 채우기도 하지만 교역보다는 약탈이 더 손쉬운 법이다. 그리하여 말을 타고 싸우는 유목민 전사들이 등장했다. 북쪽의 유목민들은 기병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다지면서 수시로 중국을 침략했다.
거란족의 요나라는 송나라와 고려를 압박했다. 이후 여진족의 금나라가 요나라를 없애고 한족의 송나라를 공격하여 화북지역을 차지했다. 송나라가 양쯔강 남쪽으로 밀려난 이 시기를 남송시대라 부른다. 그리고 이제 13세기에 들어서면 몽골고원에 생긴 몽고제국이 일취월장하여 큰 변화를 몰고 온다. 몽고족은 원래 몽골고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테무친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부족을 통일하고 1206년 칭기즈칸에 추대되어 제국을 세웠다. 이후 몽고족은 뛰어난 기병을 앞세워 영토를 정복해 나간다. 몽고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더스강까지 점령했으며,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하고 고려도 복속시켰다. 또 남러시아를 거쳐 헝가리까지 진출했으며 서아시아의 압바스왕조도 멸망시켰다. 13세기 말 몽고는 마침내 송나라까지 멸망시키고 유목민으로는 최초로 중국 전체를 호령하게 되었다. 이들이 중국에 세운 나라의 이름이 원元나라다.
세계제국 몽고는 모든 영토를 직접 다스리지는 않았다. 칭기즈칸이 죽은 뒤 민족의 관습에 따라 자손들이 영토를 나눠가지면서 4개의 한국이 출현했다. 물론 중국, 몽골, 만주지역을 직접 다스렸다. 중국에 세운 원나라는 세계 제국의 중심지였다. 원나라는 다른 문화에 열린 태도를 취했다. 이들은 이슬람세계로부터 자연과학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교, 라마교 등이 중국에 전해진 것도 원나라 때였다. 유라시아대륙을 통째로 지배하던 몽고의 영토에서 조그만 고려가 빠져있다. 신기한 일, 아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세계제국 몽고의 지도에서 고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고려인의 강력한 저항 덕분이다. 비록 크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강인했던 우리 조상의 생명력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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