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삶은 장자莊子가 말하는 ‘울타리 밖의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울타리 안에 산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며 인위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았다면, 이제 자연에 스스로를 맡길 일입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 인지에서 벗어나 주어진 환경에서 노닐 뿐입니다. 무언가 되어가는 대로 기다릴 뿐입니다. 편안히 어울려 무엇이 되어가는 것도 잊은 채 그렇게 지내다 고요히 자연으로 들어갈 수밖에.
많은 지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다고 SNS를 통해 알려줍니다. 관심을 둘만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 나는 세상 울타리 밖에 있습니다. 주변 탄천을 걷고 학교 가서 아이들과 놀고, 집에 오면 책을 읽고 손자와 함께 놉니다. 주말이면 산을 찾지만 특별히 한다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삼시세끼를 대부분 집에서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이 삶의 전부입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한다는 할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것도 없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즐거운 것도 불만도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적절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입니다. 외부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며 사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를 보냅니다.
사진은 아이들 만나러 학교 가는 길입니다.
‘거협胠篋은 상자를 연다는 뜻으로 도둑질을 위해 상자를 여는 것을 말합니다. 상자를 열고 자루를 뒤지고 궤짝을 뜯는 도둑을 막겠다고,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로 튼튼하게 잠가둡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는 것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도둑은 궤짝을 등에 지고 상자는 손에 들고, 자루를 어깨에 메고 달아나면서 끈과 자물쇠가 단단하지 않을까봐 걱정합니다. 결국에는 세상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큰 도둑을 막기 위해 꽁꽁 싸둔 셈 아닙니까?
큰 도둑을 도와주기위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닙니까? 큰 도둑을 지켜주기 위해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옛날 제나라에서는 이웃마을이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우는 소리, 개짖는 소리가 서로 들렸습니다. 그물 쳐서 고기를 잡고 쟁기와 괭이로 일구는 땅이 사방 이천리나 되었습니다. 나라 안 곳곳에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고을을 다스리는 데 언제나 성인의 법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전성자田成子가 제나라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훔쳤습니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적이라 불리기는 했어도 몸은 요순처럼 편했습니다. 작은 나라는 비난조차 못했고, 큰 나라도 공격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씨는 십이 대에 걸쳐 제나라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제나라 땅만 아니라 성인과 지식인이 만든 법까지 훔쳤기에 도적의 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큰 도둑을 도와주기 위해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닙니까?
도척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습니다.
도둑질에도 道가 있습니까?
어디엔들 道가 없겠는가?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게 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게 勇이고, 나중에 나오는 게 義이다.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것이 知이고 고루 나누는 것이 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될 수 없다.
착한 사람이라도 성인의 길을 가지 못하면 자신을 내세우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도척도 성인의 길을 가지 못하면 도둑질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착한 사람은 적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성인이 세상에 베푸는 이득은 적고 끼치는 해가 많습니다. 그러니 성인을 없애고 도둑을 내버려두면 세상이 스스로 돌보아질 것입니다. 성인이 죽으면 큰 도둑이 없어지고 세상이 평화롭고 아무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혁대 고리를 훔친 사람은 사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사람은 제후가 됩니다. 제후의 문 앞에 내걸린 '사랑'과 '정의'를 보세요. 사랑과 정의, 훌륭함과 앎을 통째로 훔쳐간 것 아닙니까? 큰 도둑은 악명을 떨쳐버리고 제후라는 이름을 내걸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정의, 법, 어음증서까지 모두 훔칩니다.
누구나 세상을 나름대로 볼 수 있다면 세상이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들을 수 있다면 세상이 지겹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알 수 있다면 세상에 홀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살 수 있다면 세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모두 나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할 줄 압니다. 그런데 이미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할 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성인이 누구를 위해 사랑과 정의를 외치고 지식인이 누구를 위해 앎을 추구하는가하는 통찰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법과 도덕과 지식은 큰 도둑의 도구와 노리개가 되었고, 그것을 생산하는 성인과 지식인은 결국 큰 도둑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 합니다. 그런 성인과 지식인이 없어져야 누구나 제대로 보고 듣고 알 수 있어, 세상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장자’ (조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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