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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세계사 (남경태)

에필로그-문명의 뒤섞임, 차이와 통합을 아우르는 시대로

 

 

세계가 하나로 묶인 20세기에만 지구촌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세계사의 일부였다. 고대사에서 보았듯이 아득한 옛날에도 민족이동은 끊이지 않았으며 민족과 지역 간의 교류와 교섭, 전쟁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날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결렸고 장구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었을 뿐이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의 탄생과 시작에서 또 독자적인 역사의 전개과정에서도 서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인도는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와 별로 관계가 없었다.

 

인도는 사실 지리적만으로 동양에 포함될 뿐 문명적으로는 서양에 가깝다. 흔히 4대 문명의 발상지를 말하자면 실상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네 곳이 아니라 두 곳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은 하나의 문명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세 지역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을 뿐 아니라 지역 간 높은 산맥이나 넓은 바다가 없어 비교적 교통이 어렵지 않다. 인더스 문명은 후대에 전승되지 않고 맥이 끊겼으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역사는 오리엔트 문명권에 속한다. 그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 중류의 중원을 무대로 다른 문명의 발상지들과 별도로 문명이 발생했다. 황허문명이 발한 이후 하, , , 고대국가와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2000여 년간의 제국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류문명은 오리엔트 문명과 황허 문명이다. 오리엔트 문명은 훗날 유럽문명의 뿌리가 되었고 황허문명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세계를 이루었다. 이 두 문명이 각각 서양사와 동양사의 두 축이 되는 셈이다.

 

서양사는 오리엔트에서 발생하여 성장하다가 소아시아로 이동했다. 소아시아의 서쪽에는 에게 해와 그리스이다. 소아시아 문명은 먼저 크레타 섬으로 전해져 미노스 문명을 이룬다. 그리스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리아인이 발칸을 거쳐 펠리폰네소스 반도까지 남하해 토착원주민들과 섞였다. 이들은 크레타의 미노스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미케네 문명을 발달시켰다. 이후 그리스는 도리스인의 침략으로 수백 년간 암흑기를 겪은 뒤, 폴리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이후 서양문명은 다시 서쪽의 이탈리아로 옮겨가 로마를 중심으로 지중해 시대의 문을 열었다. 5세기에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서양사의 중심은 게르만족이 있던 중부유럽으로 북상한다. 최종계승자는 서유럽이다,

 

이렇게 민족이동과 중심이동이 활발했던 서양사에 비해 동양사는 내내 지역적 중심이 고정되어 있었다. 중국역사의 중심은 황허문명이 발생한 주원지역이었고 20세기 초 제국시대가 끝날때까지 중심이 변하지 않았다. 민족의 변천과 이동 역시 마찬가지다. , 은 주, 삼대는 모두 중원중심의 소국이었다. 주나라 때 세력을 떨쳐 큰 나라로 성장하는 대신 주변에 제후국들이 들어서는 체제를 이루었다. 이 제후국들이 발전하면서 500여년의 분열기를 거치게 되지만 그 중심은 변하지 않았고, 기원전 221진시황이 최초로 대륙통일을 이루었다. 중원중심의 제국이 들어섰다. 이후 중원에서 제외된 사방의 이민족들은 오랑캐로 규정되었다. 중원북쪽의 몽골초원과 만주를 터전으로 삼은 흉노, 돌궐, 몽골, 여진 등 북방이민족들은 중원정복을 꿈꾸었다. 그것이 실패하면 서쪽으로 쫓겨났고 성공하면 중원을 지배했다. 전자의 경우 서양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후자의 경우는 한족 제국을 대체했다.

 

중심이 이동한 서양사와 중심이 고정된 동양사, 이 근원적인 차이는 문명의 발생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두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중심이 고정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제국시대가 수천 년 동안 지속되면서 여러 제국이 흥망을 거듭했고, 중심이 계속 이동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하나의 통일제국을 유지 못하고 지역분권시대가 열렸다. 동양에서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중화사상이 성립하고, 여기서 발달한 유학이라는 정치이념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나, 다중심 세계였던 유럽은 정신적 통일을 이루어야만 동질적인 문명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이다. 17-18세기부터 서양세력이 동양에 진출하면서 서양사와 동양사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섞임 과정이 몇 세기 진행된 결과 지금은 지구 전체가 거의 단일한 문명권으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