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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아이 손을 놓지마라

무더운 여름날 자꾸 밖으로 나가자는 손자를 데리고 가까운 율동공원으로 나갔다. 무더운 여름날 손자를 따라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손자를 좋아한다지만, 할배에게는 무척 힘든 고역일 수밖에 없다.
 
한 동안 주어진 환경 내에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여유롭게 지내다 올해 들어 갑자기 삶의 여유가 없어졌다. 육십대 후반에 들어서 할아버지역할, 부모역할, 자식역할, 배우자역할, 아이 돌봄역할을 하게 되면서 요즘은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역할 중 어느 하나도 대충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할아버지역할과 아이 돌봄역할이다. 우리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산다고 하지만, 돌봄 선생역할을 하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요즘 아이들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은 쉬운 인공암벽을 할 수 있고 매트가 깔려 있어, 맘껏 뛰고 뒹굴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뛰어놀 옛날 골목 같은 공간도 시간도 없다. 학교수업 아니면 방과후에 기예를 익히는 방과후 수업을 하고, 영어수학, 그리고 피아노 등의 학원을 가야 한다. 어쨌든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학원을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 교육 대부분을 부모가 아닌 누군가에게 맡겨진다. 나는 인간이 해야 할 일중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것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 중 핵심이 ‘아이와의 애착관계 형성’이다. 학폭이나 왕따 같은 학교문제나 우리 사회 문제 대부분은 어릴 떼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잘못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집에서 산다고 그냥 형성되지는 않는다. 애착이란 우리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물질이나 설교나 어떤 교훈적인 좋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으로 익혀져야 한다. 설득으로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 교육은 육체적 수련이 목적이다. 체험으로 정신을 단련해야 한다.
 
아이가 인생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이를 준비시키는 것은 부모와 교사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배운 지식의 가치와 이를 가르치는 올바른 방법은 이 목적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자녀를 돈을 많이 벌고 사회에 걸 맞는 사람으로 기르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부모,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는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부모의 역할, 부모로써 지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모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계를 꾸리려면 준비가 필요하지만, 한 사회의 어른이 되고 자녀를 기르는 데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고 결혼만 하면 부모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잘못 되는 것은 모두 아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우리 삶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책임 즉, 가정을 세우고 가꾸는 일을 위해서 단 한 시간도 쓰는 법이 없다. 너무 쉬워서 그런가? 어른이 감당해야 할 본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가정을 이루고 가꾸는 일이다.
 
 
왜 3살까지 아이를 엄마가 길러야 한다고 할까? ‘나’는 인간이라는 육체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에 대한 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도 동물이라 타고나는 생존본능이 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작동하도록 태어날 때부터 뇌에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지침, 방향을 뇌의 신경네트워크에 구축해 나간다. 그것을 꿈이라 하고, 삶의 의미라 하고, 욕망이라 하고, 신념이라고도 한다. 새끼오리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는 것은 뇌에 이미 그렇게 새겨져 있는 본능 때문이다. 그것을 ‘애착’이라고 한다. 모든 동물은 애착본능이 있다. 애착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 ‘나’는 애착본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애착은 ‘나를 지켜줄 무엇이 있다는 의존감’이라 할 수도 있다.
 
 
애착으로 자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을 때 비로소 두려움 없이 밖으로 나가 내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렇게 자기주도적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도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의 뿌리가 애착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삶의 힘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중요하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삶이 불안하고 자기주도적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언제나 어디에 의지하려고 한다. 만약 아이가 부모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또래 친구들에게 애착을 갖게 된다. 부모와의 애착이 가장 튼튼한 뿌리다, 세상 어디에도 부모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존재는 없다. 아이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줄 존재는 부모다. 어떻게 또래의 아이가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일상에서 모든 게 아직 미숙한 아이들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모와 애착관계가 형성된 다음에야 비로소 외부로 나아갈 수 한다. 어떤 아이가 말을 잘하고, 영어를 잘하고, 수학을 잘한다고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부모와의 애착이 형성된 다음 이야기다. 부모가 아닌 또래아이가 애착대상이 되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부모와 애착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아 불안한 상태에서 또래애착이 만들어지면, 또래 지향적인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학폭의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왕따가 될 수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과 포숙아 같은 좋은 친구 관계를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이다. 애착관계를 만들어줄 좋은 부모가 있고 인생을 함께 논할 그런 좋은 친구가 있다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부모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 탓을 하지 말고 아이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급속도로 악화된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경제적인 문제가 그 무엇보다 최우선시 되는 가운데, 부모-자식간의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형성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렇듯 경제적 압박이 부모 역할을 뒤흔들고 아이들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가혹하게 인류문화 전달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지난 몇 십년사이에 세계경제는 전통적인 가정과 공동체 연결망을 뒤흔들면서 상황을 불안한 방향으로 끌어왔다. 그 결과 우리는 미숙함, 문화적 소외, 학습수준의 저하, 약물사용, 공격성과 왕따, 아동폭력의 증가라는 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 혹은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라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사람처럼 보일지, 어떤 가치에 의지할지, 어떤 문화를 받아들일지, 어떤 행동양식을 채택할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서로를 따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또래지향성’이라 한다. 부모가 부모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아이들은 반드시 부모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금의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들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잃어버리고 있다. 이것은 부모가 양육기술이나 관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애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곤 한다. 아이가 함께 있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면,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전달하는 근원적인 구조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애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애착관계를 단단히 지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의 형성이 절실하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관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아이를 잘 키우고 가르치는 비법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들과이 모든 상호작용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존중하는 데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부모의 의미는 쇠퇴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부모의 역할을 신성시하는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현대 부모로써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문제가 왜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자각을 통하여 강압이나 인위적인 위엄으로 아이들의 협조나 순종, 존경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살피는 힘을 가진 어른으로서 관계에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권리와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립적이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로 발달해 나가느냐 마느냐는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
(고든 뉴펠드, 가보 마테의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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