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씨가 봄이었다가 여름이었다가 가을입니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봄날을 코로나로 시작하여 다시 목감기 때문에 고생합니다. 토요일 병원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세요.
고등학교 사회참고서에 ‘정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치politics란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polis라는 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규정한 것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성질과 조직적 집단을 형성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방법은 polis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의존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잡하고 모순된 동물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역시 모순적이고 복잡하다. 그리스인들은 국가가 사회분쟁을 해결하고 국민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개인의 행복을 실현시켜 주는 유일한 수단이 ‘정치’라고 보았다.”
동양에서 ‘정치’(政治)의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로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조화로운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로운 것,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정치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치(政治)는 다른 말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政治家)는 먼저 자신의 부족한 것, 자연의 이치에 조화롭지 못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스려 극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 곤란함 등 부조화로운 면을 조화롭게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타인과의 끊임없는 상호관계로 이어진다. 개인은 자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권력, 영향력, 사회적 지위 등과 관련되어 있는 행위를 우리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영향력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공적인 제도나 정치가들에 의해 행사되는 결정이나 행동만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정치라고 나는 이해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인간들은 제각기 자기 목적이나 욕구의 충족을 위해 행동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 및 다른 집단과의 경쟁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이 추구하는 대상인 여러 가지 사회적 기치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위해 공동생활에서의 대립, 갈등을 적절하게 조정 처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라는 것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복잡성으로 발생하는 인간과 인간과의 대립, 갈등, 투쟁을 적절하게 해결하여 사회의 통합을 이룸으로써 질서를 형성, 유지해 나가야 한다. 국가가 이러한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갈등과 분쟁 당사자들의 권위나 힘보다 우월한 영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치권력’이다. 국가는 이런 갈등을 합법적 권력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인 모든 가치를 배분하게 된다. 국가는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행복’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탐구하고 실천할 때 항상 좋음, 善을 목표로 한다. 선善은 착함이 아니라 좋음으로 해석해야 한다. 동양철학에서 善을 좋음으로 해석해야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다. 추구하는 목적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경우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고 또 어떤 경우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목적이다. 또한 행동, 기예技藝, 학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목적도 다양하다. 다른 것을 지배하는 더 으뜸가는 기예는 지배를 받는 기예의 목적보다 나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으뜸가는 목적, 최고의 善 때문에 종속되는 목적을 추구한다. 우리가 최고 선, 좋음을 목적으로 하므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으뜸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좋음을 연구하는 학문은 다른 학문을 포함하고 지배하는 학문이다. 나는 국가에 대한 학문, 정치학이 그런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학문은 나와 공동체를 政治하기 위한 학문이다. 나와 국가의 행복을 위해 최고의 善을 선택하여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학은 다른 모든 학문을 활용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
정치학의 목적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좋음’이다. 공부의 목적 또한 좋음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한 인간이 추구하는 좋음이 그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것이라면, 그가 속한 국가가 추구하는 좋음은 더 고귀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의 좋음이 더 크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목적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정치학의 주된 논의는 인간의 삶에서 발생하는 여러 행위들과 그것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정치학의 목적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행동이다. 사람들은 ‘최고 좋음’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잘 사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잘 행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행위를 하기 위해 내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세상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가 잘 살기위해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최선의 것을 행해야 한다. 최선을 행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국가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할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혼돈스러우며, 돌아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국가의 운명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에게 달려있다. 정부기관은 정치의 도구일 뿐이다. 결국 국가의 생존은 그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국민들에게 달려있다. 나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을 잘못 뽑으면 그 나라는 한 순간에 간다. 그러한 상황을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최소한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아니면 그 국민은 똥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그런 정치인들을 뽑아 놓고 정치를 욕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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