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내가 좋아하는 도봉산코스를 찾았다. 봄 하늘이고 봄 햇살이고 봄 바람이다. 봄 햇살을 즐기며 오랜만에 7시간 정도 긴 산행을 했다. 자연의 변화는 햇살에서 시작된다. 이제 자연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앞으로 얼마나 인간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인간 개체수 증가, 자원고갈, 생태계 파괴, 동식물 멸종위기, 빈곤, 환경오염, 개인화에 의한 고립, 국가 간, 민족 간, 계층 간 갈등심화 등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인간이 해결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인류의 문제란 어느 개인, 어느 계층, 어느 국가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전체의 문제이므로 어느 누구, 어느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 함께 협력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개인이든 국가든 상호협력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다시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와 복종관계로 가고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1762년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당시 사회지도층의 부패와 탐욕과 위선은 물론, 인간이 자랑하는 문명사회의 정신적 도덕이 얼마나 미약하고 왜소한지 독설과 야유로 비판했다. 그때에 비해 인간이 진화했는가? 더 지혜롭고 고상해졌는가? 아니면 더 악랄하고 교활하고 잔인해졌는가?
인간은 스스로를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미개한 인류와 구분하여 현대 인류를 더 지혜롭다고 하여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말은 생각하는 인간,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간들, 호모사피엔스들은 정말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 인간의 미래가 불안한 것은 생각 없이 살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했다. 쉽게 말하면 ‘아주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시대에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잔인한 살인마라고 욕했다. 그는 왜 끔찍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것일까? 그는 단지 명령 받은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성실히 해낸 일이란 게 무엇일까? 그것은 잔인하게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일이었다. 그는 아주 부지런히 일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부지런함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는데 있다.
즉 아이히만은 너무 성실한 공무원이었기에 악마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즉 유대인들의 수송, 학살의 최고위급 전문가로서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고안하고, 죽음의 장소로 이동시키라는 웟 사람의 명령을 너무나 성실하게 따랐던 것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경우를 보면 악마란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무조건 했던 것이다.
생각이 없으면 우리도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다. 일사분란한 명령을 중시하는 경찰, 검찰, 군대 같은 조직에서는 사실 구성원 개개인들이 생각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이다. 일상의 삶에서는 훌륭한 시민이었겠지만 전쟁터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오래 지내다보면, 언제든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생각하며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보통의 경우엔 별 생각 없이 산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조직의 분위기와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존재한다는 말은 너무 애매하고 어렵다. ‘내가 생각한다’는 말은 단지 ‘내가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생각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갖고 있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내가 가진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다. 예전에는 ‘공을 차는 여자아이를 보고 무슨 여자가 공을 차냐’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여자와 축구가 연상되는 순간 잘못된 출력이 나온다. ‘생각했다’기보다 ‘반응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의심해 보는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왜 그럴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마주칠 때, 그때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니체는 모두가 옳다고 확신하는 말들에 딴죽을 많이 걸었다. 니체는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니체는 우리의 ‘이웃 사랑’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내 주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끼리 뭉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끼리 뭉치면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왕따가 된다. 지역감정은 자기 동네사람끼리만 친하고 다른 동네 사람들은 미워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이 아닌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니체는 나에게 익숙한 것에서 떠나보라고 한다. 우리는 이때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즉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생각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모습에서 떠나 볼 필요가 있다. ..” (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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