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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자유

포근하고 편안하게 안겨 오는 손자를 재우기 위해 자장가를 듣는다. 손자는 말똥말똥하고 할배만 졸고 있다. 은퇴 후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손자들, 독서지도 하는 아이들 그리고 올해부터 나와 인연을 맺게 될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 그러다 보니 아이들 관심사가 내 관심사다. 은퇴 후 어느 곳에서도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자괴감으로 힘들 때 아이들에게 선택받았다. 독서지도를 하다보면 또는 손자와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아이들이 묻는 질문의 대부분은 낱말의 개념에 대한 것이다. 또는 문장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선생님 ‘생각’이 뭐예요? ’자유’가 뭐예요?”같은 아이의 엉뚱한 질문으로 나의 무지함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나에게 소크라테스다.
 
우리 인간들은 서로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발전시켰다. 사물에는 원래 이름이 없다. 하지만 사물에 대해 말할 때 사물들을 각각 구분할 수 있도록 인간이 이름을 생각해 낸 것이다. 언어는 우리 사고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 생각을 도구로서의 언어로 옮겨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대상들과 동식물들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사물들을 지칭함과 아울러 사물 각각에 대한 표상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의자’를 의자라고 부르려 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틀림없이 의자는 이러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의자를 의자로 인식하고 의자가 아닌 것들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의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자의 특징들을 열거함으로써 우리는 의자를다른 사물들과 구분하고 한계를 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정의定義’라고 한다. 정의를 통해 우리는 어떤 개념에 대한 경계를 정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알지 못하고 확인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저 물건이라 칭한다.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며 알 수 있게 되고 사물의 명칭을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것이다. 그것을 ‘개념’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어떤 사태에 대해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떤 사태가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오감을 통해 그 대상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개발된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상의 특성을 말해주면, 그 사람은 대상을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고도 그것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가진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이나 사태가 무엇인지 알게 됨으로써 적절한 방식으로 명명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중요한 목표중 하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단어들에 대해 개념을 갖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경험하고 만들어낸 대상들일 경우에 우리는 나름대로 이미 대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 만들지 않은 사물들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이 세상을 직접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인식하고 싶어 한다. 세상을 인식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 지식이다. 지식은 어떻게 생기는가? 무언가를 잡아 쥐는 행동을 ‘파악’이라 하고, 어떤 대상을 파악하고 난 후 어떤 사실이나 대상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을 바로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보고 머릿속에 그것에 대한 표상을 가진다. 많은 경우 우리가 눈으로 인지하는 것은 항상 특정한 관점에서 본 사물의 모양일 뿐이며, 사물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한 완전하게 인지하도록 해야 하고, 때로는 시각적인 인상을 느낌으로 보충한다. 맹인들은 바로 감각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맹인들이 같이 또는 따로 나누어서 코끼리를 더듬어 본 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되면, 그들은 마침내 코끼리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 그때 각자는 자신이 전체의 일부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 개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진실은 일면적이며 일부분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진실은 전체다.
 
인간에게 언어가 중요하다. 언어활동이 그 인간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다. 언어활동에서 먼저 낱말의 개념과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대부분은 자주 사용하는 낱말들에 대해도 그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특히 실체가 없는 사랑, 자유, 정의, 생각, 느낌 ,..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러한 낱말들에 대해 제대로 개념을 알고 사용하지 않는다. 애매모호한 낱말들을 일상에서 누구나 자기방식대로 그 낱말들을 의심없이 사용한다. 당연히 서로 소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토의토론 수업을 할 때 먼저 논제에 대한 중요한 용어의 개념부터 정의한다.
 
아이들에게 ‘자유’라는 낱말에 대해 이야기하기위해 철학자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이야기 책 ‘생각한다는 것’을 읽고 정리해 본 것이다.
 
... 자유란 무엇일까? 누가 간섭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맘대로 사는 것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어리석은 생각 속에 갇혀있다. 누가 가두지 않아도 스스로 갇혀 있다는 것이다. 제 멋대로 사는 것과 자유롭게 사는 건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라는 젊은이를 무척 아꼈다. 알키비아데스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당시 최고의 권력자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얼굴도 잘 생겨서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알키비아데스는 더 큰 명성과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런 알키비아데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이 말은 ‘네 주제 파악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돌보고 가꾸라는 말이다.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과 부를 가졌지만, 정작 무엇이 훌륭하고 무엇이 좋은지를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도 망칠거라면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훌륭함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두 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 사랑하는 알키비아데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으나, 의사의 지혜는 갖지 못한 병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결국 자기 몸을 해치게 되지 않겠는가?
알키비아데스: 맞는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 배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좋아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으나 선장의 지혜와 훌륭함은 갖지 못한 자가 선장이라면, 그 사람과 그의 동료인 뱃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알키비아데스: 아마 모두 죽었겠지요.
소크라테스: 그런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인에게 적합할까, 노예에게 적합할까?
알키비아데스: 그런 자유는 자유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그 동안 제가 원했던 자유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왜 그런가? 간섭받지 않고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가? 내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선택을 무조건 존중해주는 게 자유로운 사회일까?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내 자유다’라며 자기가 먹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고 한다.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자유로워지려면 술을 마실 것이 아니라 줄이거나 끊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는 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것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잘못된 습관으로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어서 마시는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자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유라기보다는 습관이다. 잘못된 습관은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대부분 관성과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 자유란 공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공부함으로써 습관이나 편견,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벗어남의 자유다. 술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술 아니면 못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자유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능력의 문제다. 그것은 무언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힘, 다르게 살아가는 힘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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