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초6년 아이들과 함께 거의 1년 동안 단군부터 김구까지 58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공부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공부하며 노력했다. 우리역사 공부를 하고 난 후 느끼는 것은 자부심은 없고 분노와 안타까움, 부끄러움 그리고 허탈함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먼저 기반이 되어야 하는 지식은 언어와 수학이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기반이 되어야 할 지식이 역사와 지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학과 영어를 위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는 반면,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지식기반이 너무 허약하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익히기 위한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아이가 시를 쓰고 미술을 배우고 음악을 배우는 목적은 시인이나 음악가, 화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작품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생활, 시적인 감성을 키우고 탐구를 하는 생활을 하기 위한 방법을 익히는 것 과정이다. 시를 쓰는 과정은 시를 찾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쓰고 나면, 거기서 다시 출발하여 끝없이 새로워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詩的생활이다. 이러한 생활 태도를 몸에 익히는 것이 시를 교육하는 목적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배경지식으로 이름, 용어, 개념에 내포된 것을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다. 이해하는 것은 지식을 몸에 익히는 소화과정이다. 이해의 정도에 따라 지식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해에는 왕도가 없다. 이해라는 것이 맛있는 식사처럼 단번에 흡수되고, 똑같은 식단이 모든 이들에게 효과적이라면 얼마나 쉽겠는가? 각 개인들은 잘못된 개념들과 오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해 어떻게 하든 처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교육의 목적은 궁극적인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 경이로운 느낌을 유지하고 이해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와 개념들의 다면적인 생각은 공부기회를 제공한다.
기반지식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사람들 간의 차이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품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생각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역사로부터 배운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대부분의 지식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예를 들면 왜 조선이 망하고 일본 식민지가 되었는지, 왜 분단이 되었는지, 왜 6.25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된 적이 있는가? 언제나 그렇듯 덮어두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 이러한 역사적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털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음 글은 남경태 작가의 ‘종황무진 한국사’의 에필로그를 정리해 본 것이다.
“ 1948년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한반도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제부터 한국사는 하나가 아닌 둘의 역사다. 더욱이 이 현대사는 아직 진행 중이므로 역사라기보다는 시사에 가깝다. 남한에 관한한 1948년부터 지금까지의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유사 이래 최대의 비극이라 할 소모적인 내전이 있었고 이승만 문민독재와 박정희 군부독재를 겪었고, 그 뒤에 다시 군부독재가 계속 되기도 했다.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영역에서도 향후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음을 시사한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에 의한 세계의 분할의 일환으로 일어났다. 이 전쟁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이란 슬로건 아래 김일성 정권이 도발하였고, 그에 대해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외세를 불러들여 저항한 미소냉전의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두 집권 세력이 정권수호 차원에서 전 국민을 볼모로 잡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을 벌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조선 내내 비일비재했다. 그 뒤 남한에서 전개된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역시 오랜 왕조시대를 경험한 우리 사회의 특유의 정치 지상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공화정의 전통이 전혀 없었던 우리 역사에 외부로부터 이식된 공화정은 곧 왕정의 연장과 다름 없었으며, 시민사회의 역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의회민주주의란 곧 조선시대의 의정부의 다른 형태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화국 대통령이었지만 사실상 국왕으로서 절대권력을 누렸고, 국회의원들과 관료들은 조선의 사대부처럼 때로는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때로는 권력자를 끌어들여 자파세력을 공고히 하는 데 열심이었다. 심지어 공화국의 국민들조차 스스로를 왕국의 백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과거가 비관적이라 해서 미래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굴곡과 질곡이 많은 역사일수록 더 큰 도약을 꿈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자각의 선행되어야 한다. 대개의 나라들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모든 질서가 뒤집어지는 혁명의 과정을 거쳤다. 혁명은 큰 폭의 변화가 아니다. 혁명의 본질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래서 혁명은 과거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혁명의 과정에 외세가 개입되면 실패로 끝나기 쉽다. 그 과정이 폭력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혁명의 본질과는 관계없다. 우리 역사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단절의 계기가 있었지만, 그러질 못해 수많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 왔다. 다른 나라라면 쿠데타나 민중의 반란으로 지배층이 교체되어야 마땅했을 상황에서도, 우리 역사는 좀처럼 그런 현상을 보기 힘들다. 고려의 현종과 조선의 선조가 북쪽 거란과 남쪽의 일본의 외침을 맞아 각기 남쪽으로 북쪽으로 도망쳤을 때도 왕조는 바꾸지 않았다. 고려 무신정권과 조선의 인조 정권이 백성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들어갔을 때도 왕실은 다시 나와 멀쩡히 권력을 이어갔다.
해방 후 친일파를 단죄해야 할 때도, 이승만이 한국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한강 인도교를 끊으며 도망쳤을 때도, 무능한 지배층을 그대로 놔두었다. 역사는 지배층 단독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평가에서는 부패한 지배층을 응징하지 못한 민중의 책임 또한 면할 수 없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조선시대 당쟁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자세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치와 행정의 모든 중심이 오로지 권력을 획득하는 목표에만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정치와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할 행정, 예컨대 장기적인 SOC 국책사업도 정권이 바뀌면 성격과 진행방법이 달라질 만큼 우리사회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정치 지향성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층의 그런 작태를 민중이 용납해 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역사에서 적어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으로 모순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원죄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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