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나 한잔 들고가게!

글쓰기

독서지도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그냥 아이들과 책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다. 독서지도는 책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그러한 과정은 내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동안 초1학년부터 중2학년까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글을 쓰면 맺힌 마음이 풀어진다. 글을 쓰면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외로운 마음, 억눌린 마음, 올바르게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가꾸는 글을 쓴다는 것은 귀하고 즐거운 공부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온갖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고 듣고 한 것을 누구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써 놓은 것이 글이 된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막막할 때 도움을 받은 책이 ‘이오덕의 글쓰기’다.
 
... 아이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착하고 참되게 곧 사람답게 기르는 좋은 교육이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삶을 바라보게 하여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정직한 글을 쓰게 하지 않고, 삶을 덮어두고 삶을 등지고 돌아앉아 거짓스런 말장난을 하게 한다. 아이들을 지키고 아이들을 살려야 할 교육이 도리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아이를 잡는 교육으로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교육을 팔고 아이를 파는 장사꾼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저대로 이 길이 아이들을 살리는 단하나의 길이라고 믿는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뿐 아니라, 글쓰기 교육의 본질이며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글은 본래 쓰기 싫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은 것을 쓰게 하지 않고 남의 말과 남의 얘기를 써서 흉내 내도록 하니 싫어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무지와 횡포는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나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교육과 문화의 조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까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쓰기 힘든 글의 제목이다. 아이들이 삶과 마음의 세계를 무시한 어른 중심의 제목을 강요한다. 둘째 어른들의 문학작품을 흉내 내도록 가르치고 있다. 셋째 자신의 얘기를 쓰게 하지 않고 그런 글을 오히려 비판한다. 남 보기 좋은 것,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쓰려하고 거짓으로 꾸민다. 넷째 어른들이 멋대로 다듬고 고치고 대신 써 주며 상 타기에만 관심이 있다. 다섯째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만 따르게 하여 아이들을 틀에 박힌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체가 되어 행동할 줄 모르고, 꼭두각시 생활에 길들여져 그것에 만족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작은 것이라도 자기 힘으로 창조하고 생각하는 글쓰기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섯째 성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글쓰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일곱 번째 TV나 인터넷을 통한 오락, 게임 등으로 아이가 생각하기 싫어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릴 때 부모나 부모를 대신하는 식구에게 말을 베운다. 두 살에서부터 여섯 살까지 평생 쓰는 말의 대부분을 배운다. 학교에 들어가면 글자를 배우고 글을 읽게 된다. 초등학교 1,2 학년이면 한글을 거의 다 익힌다. 글자를 익힌 다음에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기도 문법을 배워서 문법에 맞춰 쓰는 것이 아니고,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배운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쓰는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로 이야기를 꾸며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쓰게 해야 한다. 책에 나오는 말을 문법에 맞게 쓰게 하는 것을 글짓기 공부라 생각하고 시킬 때에는 아이는 글을 못 쓰게 된다.
 
서울 어느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중학생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협박을 당해 자살한 일이 있었다. 저녁 어느 골목에서 학교를 오갈 때 마다 만나는 깡패소년들에게 협박을 받았으나, 그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세상천지에 호소할 길이 없는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표현하는 길이 막히면, 병들거나 미치거나 이성을 잃은 광폭한 행동을 하거나 자살을 한다. 정상이 아닌 표현을 하게 된다. 자살도 표현의 한가지다. '표현 교육'의 중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과 글로 하는 자기표현은 정서를 키우고 심정을 순화하는 따위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말하기 그리기 글쓰기는 물을 것도 없이 모든 표현교육이 버림받고 짓밟혀 왔고, 거짓된 것으로 병들어버렸다. 아이들은 자기표현이 거의 둘러막힌 상태에서 정상이 아닌 표현을 하면서 자라왔고 자라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언론의 자유에서 태어나듯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게 하고, 앞날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 아이들 생명이 피어나게 하는 일은 자유롭게 표현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민주교육도 표현교육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표현의 길이 막혔을 때 아이들은 병들거나 죽게 되고, 표현을 삐뚤어진 모양으로 하게 되고, 거짓으로 하게 될 때 아이들의 생명은 시들어 버린다. 우리 아이들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글을 자유롭게 쓰도록 교육하고 있는가? 어른들의 언론은 돈과 권력으로 병들거나 막히지만, 아이들의 표현이야 돈이나 권력과 관계가 없으니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이들의 표현은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그 교육이란 것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이 되어있고 또 정치권력의 지시, 명령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이들의 표현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요즘은 아무리 산골이라도 아이들이 TV나 인터넷으로 세상일을 바르게 보든 삐뚤어지게 보든, 모두 자기 마음대로 보고 생각하고 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온갖 일들을 보고 듣는다. 그러나 아이들 글은 봄비, 구름, 소풍 따위다. 아이들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까? 교육이 상품으로 되고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되어 있으면, 그 상품의 포장을 검사하거나 권력을 대신 집행하는 사람은 교감, 교장이 된다.
 
쓰레기 주워/ 서울 초6학년
성연이와 같이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등교를 했다.
막 6학년1반 교실을 지나가려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우릴 부르셨다.
“ 야, 저기 저것 좀 주워”
지금까지 교감선생님에게 걸린 게 몇 번째인지. ‘싫어요. 선생님이 주우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죽을 힘을 다해 참고 쓰레기를 주웠다.
그러고 나서 계속 속에 있는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뚱뚱해 가지고 지는 안주우면서 왜 나만 보고 주우래? 인간성은 되게 더러운 데 어떻게 교감이 됐지?”
교감선생님이 불렀다하면 뒷말이‘ 쓰레기 주어’이다. 이러다가 교감공포증 걸리면 어떡해?
 
우리는 아이들 글을 통해 아이들 세상을 알고 가르쳐야 한다.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사랑이 넘치는 나의 학교/ 경기 초5학년
사랑이 넘치는 나의 학교. 바라만 보아도 즐겁고 기쁘다. 요즘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더욱 돋보이는 교정이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다.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덤뿍 주시는 여러 선생님, 태양처럼 뜨겁게 정열을 다하고 종달새처럼 명랑하게 밝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며 냇물처럼 꾸준히 새로움을 창조해 가는 우리들.
예쁘게 단장한 화단과 등나무 숲,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다. 아침명상의 시간을 통해서 새겨 보는 여러 가지 교훈은 우리들 가슴에 꿈과 슬기와 진실을 심어주고, 텔레비전을 통하여 듣고 보는 영어 방송은 바르고 정확한 미래의 외국어 학습을 준비하게 한다. ....
항상 우리들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정열과 수고로움을 쏟으시는 교장 선생님과 교감선생님 ‘한 가지 지혜라도 더욱 쓸모 있게 하라’고 가르치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슬기로운 어린이가 되고 싶다. 관악산처럼 큰 마음과 청계산처럼 푸근한 마음으로 학교를 빛내고 사랑하며, 2쳔년대의 주인공으로서 바르고 떳떳한 일꾼으로 자라라고 오늘도 학교는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이 글에는 한 마디도 아이들의 살아있는 말이 없다. 어른들의 말이요 어른들의 생각이다. 어른이 써서 이름만 아이 것으로 발표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표현이 막히고 비뚤어지고 거짓되게 발표하는 꼴이 이와 같이 참담하다. 아이들은 두 겹 세 겹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아이들은 정치권력을 선전하는 교육에 길들여지고 있고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어른들한테서도 표현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 어떤 교육도 모두 속임수요 가짜다. 이런 말장난만 배운 아이들이 자라 탐욕으로 망상으로 살아가며 얼빠진 짓이나 사기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삶과 말과 마음을 가꾸는 일이 교육의 목표다. 아이들도 자신의 삶과 마음을 가꾸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
 
 

 

'차나 한잔 들고가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지비괘天地否卦  (1) 2023.01.27
감정관리  (0) 2022.12.29
부끄러운 역사  (1) 2022.12.12
인간의 도리  (0) 2022.12.12
인생의 중요한 가치  (0) 2022.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