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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세계화 다음 세상은..

가을 산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참 평화롭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깨닫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한 시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있기까지 인간은 풀기 힘든 문제들을 모두 전쟁으로 해결해왔다. 지금은 잠시 휴식기다. 인간사회는 언제나 전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다. 현대 전쟁무기의 살상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의 호전성은 그 무기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다. 전쟁을 주도하는 세력은 전자정보통신과 자동화기술의 발달로 이제 직접 전쟁터에 나서지 않고 대리전쟁을 치를 수도 있으므로 전쟁을 게임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대리 전쟁터가 중동지역, 중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많다.
 
현재 계속되는 내전들은 국가내부에서 같은 민족, 국민끼리의 내전 같지만, 실제는 내부 권력투쟁을 강대국들이 분열을 조장하여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셈이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그렇고 시리아 내전 등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많은 내전들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 다음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이해관계로 충돌을 일으킬 확률이 높은 지역이 한반도다.
 
싸움은 인간사회의 불가결한 구성요소이다. 사냥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든 배우자감을 구하기 위해서든 부족을 통치하기 위해서든, 다른 집단과의 싸움은 다른 동물 종을 상대로 한 연장선상에 있다. 생물의 다양성은 물리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지만 인간은 주로 숲을 베어 농경지로 만듦으로써 다양성에 영향을 끼쳤고, 이로써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감소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의 경쟁자인 육식동물을 인간의 정착지로부터 먼 주변부로 밀어내면서 다른 인간과의 싸움이 중요해졌다. 오해로 인해 이해관계와 반응을 잘못 계산해서 전쟁이 일어나기보다는 싸울 의지와 태세라는 형태의 인간의 호전성이 전쟁으로 이어진다. 다음 내용은 남경태의 '종황무진 서양사' 내용 중에서 작가의 에필로그를 정리해 본 것이다.
 
보통 서양사라고 하면 제2차 세계대전까지이고, 그 전쟁이 끝난 그 다음은 역사라기보다 시사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부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양이나 동양의 역사라기보다 세계사라 해야 할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기원전 300년경 고대 이집트 파라오는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누미디아 기병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은 갈리아 용병을 충원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로마제국은 결국 게르만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되었다. 용병mercenary은 상인merchant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정치적 성격보다 경제적 성격이 강하다. 용병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누구의 명령을 받들어서라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여기서 서양 특유의 ‘계약’이라는 관념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있을 무렵 중국에서는 漢제국이 있었다. 두 제국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고 각기 서양과 동양의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漢제국은 주변의 속국들이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직적 체제였으나 로마제국은 속국들이 나름대로 로마와 동맹관계, 일종의 계약관계를 맺은 수평적 체제였다. 이런 차이는 동서양이 역사에 반영된다. 서유럽 십자군은 교황 우르바누스의 선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누구의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제멋대로 행동했다. 원정도중 각자의 이익을 위해 약탈을 했고 같은 그리스도교인 콘스탄티노플에 라틴제국이라는 이상한 제국까지 세웠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을 침공한 몽골은 십자군과 달랐다. 그들은 황제(대칸)의 명령을 받아 나섰기 때문에 행동이 일사불란했고 약탈보다 파괴를 일삼았다. 동양식 체제는 명령 기반으로 행동했고 서양체제는 계약을 위주로 했다. 서양의 제국이나 군사행동은 정치적 측면보다 경제적 측면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발생에 유리한 배경이 된다.
 
12세기 북이탈리아에서는 중세 자치도시들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환전상들이 생겼고, 근대은행의 맹아萌芽를 이루게 되었다. 은행이란 돈을 맡겨두는 곳이다. 무엇을 믿고 돈을 맡길까? 신용이다. 서양의 역사는 은행이 탄생함과 동시에 신용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상인들 간 어음을 사용한 지가 오래되었어도 신용기반으로 하는 은행은 생소했다. 신용을 도덕관념정도로 여겼을 뿐 경제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상인들이 필요에 따라 금융과 은행제도를 만들었으나, 동양에서는 신용이 제도화 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정치적 표현인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民을 주권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동양역사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나기 어려운 제도이다.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한 후에 1911년 신해혁명으로 淸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2천년 동안 동양사회는 제국이 체제와 질서로 편제되었고, 그 질서의 정점에는 황제(天子)가 있었다.
 
서양사에서 동양제국 체제와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고대 로마제국일 것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중국의 어느 역대 제국보다도 중앙집권력이 약했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천년에 이르는 중세는 교회가 문명의 동질성을 유지했지만, 정치권력의 중심이 부재한 분권체제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의회가 구성될 수 있었으며, 신분제가 약해지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 의회가 평민을 대표하는 기구로 탈바꿈할 수가 있었다. 그 의회를 바탕으로 근대 민주주의가 성립했다. 서양사에는 이렇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이 길고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 동양은 어떤가? 서양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에 걸쳐 무수한 피와 땀을 먹으며 키운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체득하기 위해 동양도 그와 같은 기간이 필요할까? 이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서양의 것이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제도로 자리 잡아 가고있다.
 
인류역사 5천년을 거치면서 서양문명은 지구를 서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서아시아에서 생겨난 서양문명이 싹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뿌리를 내렸고, 서유럽에서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는 대서양으로 건너가 아메리카로 이전되었고, 거기서 또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그 결과 싫든 좋든 서양문명의 최종 결과물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점차 전 세계로 확산 되었다. 오리엔트에서 탄생한 문명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확산된 서양문명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제 이슬람문명권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가 이식되면 서양의 문명 이동은 끝이 난다. 서양문명의 끊임없는 이동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가 단일 문명권이 되었다. 이러한 글로벌 문명이 성립되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그 다음은 로컬이다. 세계가 동질적인 문명권으로 묶이고 나면, 특정 문명이 압도하는 시대는 종식될 것이다. 이후 세계는 다원화 될 것이며 기존 전통문명들이 다원화의 축으로 기능할 것이다. 로컬문명도 더 하위문명으로 쪼개질 것이다. 서양문명은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으로 세분화 되고 동아시아문명은 한, 중, 일, 동남아 각 문명으로 나뉠 것이며, 이슬람문명과 인도문명도 지역, 종교, 문화 등을 기준으로 나뉘어 복잡한 양상을 이룰 것이다. 이제 하나의 문명이 힘으로 다른 문명을 압도하고 정복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안정과 평화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양한 로컬문명들은 더 치열하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문명은, 힘 있는 문명은 로컬문명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로컬로서 존재 마저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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