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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역사

비 내린 후 도봉산을 오르니 세상은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일진광풍 一陣狂風이 불더니 눈앞에 산봉우리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교육 중 가장 허술한 것이 ‘역사’다. 나는 역사가 인문사회와 사회과학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역사적 유물, 역사적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등 단편적인 지식만을 열심히 암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외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면서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무지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초등 4,5학년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독서지도를 한 적이 있다. 역사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어떤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고, 그 사건이 그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배워 우리 삶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역사를 왜곡한다고 일본이나 중국을 비난할 것 없다. 왜 우리는 지금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가? 김일성 때문인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인가?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언제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우리 역사는 빈 공간이 너무 많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역사 공부를 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 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 이다. 남경태 작가는 인문학자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2014년에 작고했다. 우리나라 지성인중 정말 아까운 인물 중 한 명이다. 다음 내용은 왜 그리스가 서양문명과 서양 철학의 요람인가에 대해 그의 책을 읽고 정리한 것이다.
 
"서양의 역사가들은 그리스를 서양문명의 요람으로 간주한다. 그 이전의 크레타와 더 이전의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문명의 선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 시대에 와서야 서양문명의 골격이 갖추어졌다는 주장이다. 유럽 중심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실제로 근거로 삼는 근거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그리스 민주주의이고, 둘째는 그리스 고전 시대의 사상이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근대 민주주의로 부활했으며, 그리스 시대의 철학과 정치사상은 오늘날까지 서양사상의 원류가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발달시킬 만한 특별한 능력이라도 지녔던 것일까?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폴리스 체제를 취했기 때문이다. 지형상 항구 중심 도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폴리스가 발달했다. 폴리스 체제는 제국주의 체제처럼 중앙집권을 지향하지 않았다.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체제가 필수적이다. 아테네가 민주정은 물론 시민층을 기반으로 하는 체제였으나 시민주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의 비율이 너무 적었고 아테네는 여전히 가문과 신분이 중시되는 사회였다. 그런 점에서 아테네의 민주정은 귀족정의 변질된 형태라 볼 수 있다. 여러 가문이 돌아가면서 정치를 담당하는 제도는 임기가 정해진 왕정이나 다를 바 없다. 그리스 민주주의 성과는 자유로운 개인주의다. 평민층이 성장하면서 아테네는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기풍으로 흘렀다. 참정권이 폭 넓게 인정되면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수사학이 발달했다. 그 소산물이 그리스 사상이다.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권위가 약한 곳에서 가장 먼저 철학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그리스 본토보다 이오니아에서 싹트게 된다. 6세기 무렵 소아시아의 밀레투스는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잇는 무역중심지로서 번영하는 국제도시였다. 이곳에서 최초의 서양 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가 처음으로 물음을 던진다. ‘세상만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주요 질문은 ‘... 이란 무엇인가?’라는 형식의 문제제기로 이루어지는데 그 시초가 탈레스이다. 탈레스 세상만물의 근본이 물이라고 했다. 탈레스의 대답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물음 그 자체다. 이렇게 근원을 묻는 사고방식이 철학이다.
 
탈레스가 제기한 물음에 대해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질原質은 경험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보고, 네 가지 성질 뜨겁고 차고, 마르고 젖은 성질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낙시메네스는 그것을 공기라고 주장했다. 공기의 농도에 따라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들을 밀레투스학파라고 한다. 또 다른 이색적인 인물이 피타고라스이다. 그는 밀레투스 앞바다에 위치한 사모스 출신으로 그는 종교적 관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다. 피타고라스가 찾은 원질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수數이다. 만물의 근원에 수가 있고 우주는 수에 기초한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피타고라스 정리와 무리수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헤라클레토스, 파르메니데스 등도 만물의 근원을 나름대로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이오니아나, 이탈리아 출신으로 그리스 본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스 본토에서 최초로 발생한 최초의 철학자는 소피스트들이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민주정이 발달한 아테네에서 토론과 설득의 기술이 중요했다. 전통적인 신분이나 재력도 여전히 중요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출세하는 세상이었다.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소피스트들이다. 소피스트들은 폴리스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관습과 문화를 두루 익혔다. 민주정을 꽃피운 아테네야말로 그들의 장기를 써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프로타고라스, 고르디우스 같은 소피스트들은 대부분 아테네인이 아니고 떠돌이 교사나 외교관으로 아테네에서 자리잡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오니아 철학자들과는 달리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의 말로 요약되듯이 소피스트들은 자연세계를 분석하는 대신 인간세계를 움직이는 기술을 철학으로 정립했다.
 
하지만 탐구를 포기하고 모든 지식을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아테네 지성계는 혼탁해졌다. 소피스트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아닌 궤변을 일삼는 자가 되었으며, 아타네 사회는 심각한 윤리적 타락마저 조장했다. 이때 소피스트들에 맞서 도덕을 강조하고 철학의 학문적 기초를 놓으려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지식 장사꾼 소피스트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독단적인 지식을 주입하거나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했다. 그것이 바로 ‘산파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대화를 통해 지리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최초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테네의 황금기를 산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늦은 나이게 악처로 유명해진 크산티페와 결혼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중장보병으로 참전해 고초를 겪었다. 그는 제자가 스파르타 첩자였다는 모함을 받아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그가 남긴 업적은 제자들이다. 모든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진정한 제자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스승의 철학방식을 계승해 대화체로 많은 책을 썼다. 이오니아 철학의 자연과 그 근원에 대한 관심,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합치면 무엇이 나올까?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원질은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수시로 변하는 세상 만물에서 찾을 수 없다. 세상만물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진정한 실체는 따로 있다. 그게 바로 이데아다. 이데아는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실체이며, 사물은 이데아를 인식하게 해주는 창문과 같다. 이데아와 사물, 본질과 현상의 관계가 수천 년 동안 서양사상중 하나인 이원론의 토대가 되었다.
 
추상적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훨씬 구체적인 사상을 전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형상form’이라는 개념으로 바꾼다. 형상은 질료를 통해 나타난다. 플라톤이 이데아는 사물개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별도의 실체인 반면, 형상은 질료와 함께 사물 개체를 이룬다. 플라톤의 이원론과 달리 일원론을 펼쳤다. 이후 수 천년동안 서양철학의 양대 축을 이루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에 그치지 않고 고대그리스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은 인물이었다. 철학과 정치학을 비롯해 논리학, 생물학, 천문, 심리학, 윤리, 기술과학 등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학문 가운데 그와 관계없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남경태의 '종횡무진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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