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란 무엇인가? 시민이란 한자로 市民이다. 市는 도시 또는 시장을 의미하고 民은 백성을 의미한다. 시민은 도시에서 활동하는 백성이란 말이다. 시민은 서양의 정치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쓰기 시작한 단어다. 영어로 citizen이며 도시 또는 마을 공동체에 사는 사람이다. 시민은 특정 권리를 갖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시민은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 사는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물리적 공간에 형성된 공동체에 대한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이 개념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발생했다. 이때는 엘리트 남성만 시민으로 인정했다.
플라톤은 직접 민주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국가’에서 다섯 개의 정부형태를 이야기했다. 가장 좋은 정부는 현명한 왕이 이끌어가는 철인정치가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자본으로 지배하는 금권정치, 권력을 가진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치, 시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정치 순이고, 독재자가 지배하는 참주정치가 최악의 정치다. 소크라테스의 판결을 본 플라톤 주장에 의하면 시민 대다수의 판단을 믿을 수 없으며, 이들이 사회를 지배할 경우 책임 없는 자유만 요구할 것이고 사회가 점점 혼란에 빠지는 무정부 상태로 끝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평등해선 안 될 사람에게 권력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시민의 자질에 관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투표권이 보편화된 국가에서는 정치적 이념의 갈등이 심해질 때 반대편 지지자들은 무식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상 아무리 권력을 분산시키고 경계해도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며, 정치에 대해서 알고 참여하는 시민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필수조건이라 여겼다. 플라톤은 다수의 폭정에 의한 지배가 개인의 무관심 때문에 독재로 변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민주주의의 긴 역사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그리스에서 논의했던 민의 전달 방법과 시민자질이 핵심이다. 민의를 그대로 반영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가장 순수한 방법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시민의 책임감과 판단력을 사회적으로 양성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반면 선택받은 집단이 민의를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간접민주주의는 사회적으로 안전한 방법이지만, 소수의 지배층이 형성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로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 성패와 미래가 시민의 손에 달려있다.
18세기 발달한 민주주의 사상과 자본주의 이론이 19세기의 산업혁명으로 도전을 받으며 새로운 사상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나타났고, 이때부터 생긴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이념적 갈등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사회적 논쟁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과 집단의 번영을 중시하는 사상의 대립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순한 정치적 구조가 아니라 시민관이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강조하는 사상이 뿌리 깊었지만, 산업혁명이 퍼지면서 자본주의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자발적으로 발생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 모순을 이론으로 정립했다. 초기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혁명이나 정부개입이 아닌 풀뿌리 운동으로 사회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초기 사회주의 이후 자본주의, 사유재산, 사회계급에 대한 시각차와 정치운동 방법에 따라 다양한 사회주의 정파가 나타났지만, 공통점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중시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개인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화는 또 다른 제국주의다. 지배국 안에서 원주민 이주는 많이 없으며 통치 방법은 관료조직에서 원주민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으로, 지배국에 협조하는 새로운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이 정책으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과 동조하는 세력이 분열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와 반대파의 대립이 생겼다. 20세기 후반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가 해방되면서 제국주의는 끝났다고 하지만, 지배국을 동조하는 세력을 통해 지배가 연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는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집단을 이루는 사상이며 집단 간 갈등을 전제로 한다.
제국주의는 통치대상이 야만적 민족이고 공산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이다. 제국주의의 주류 집단은 타자를 통치하려는 우수한 민족이며, 공산주의 주류는 프롤레타리아다. 우수한 민족이 다스리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상이 민족주의다. 말 그대로 집단에 대한 사상이다. 민족주의가 남의 지배에 맞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집단의 힘과 번영을 중시하는 사상은 근본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족주의와 충동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 집단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단 결정을 따르는 것인데, 문제는 결정을 누가 내리느냐가 애매하다. 제국주의에서의 지배국은 식민지를 통치하는 일이 우선이어서 민족주의가 자리 잡을 수가 없다. 20세기말 소련의 붕괴, 유럽의 통합, 민주주의 확산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의 자유와 해방 사상이 헤게모니를 갖게 되었다. 민주국가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균형을 지키는 것은 시민의 책임이다.
이명박 정부시절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지만 야당 또한 신뢰가 낮아서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라 또는 공동체보다는 본인의 앞날만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사회도 개인에게 공동체 의식보다 스펙만 요구했다. 인간의 가치나 자본이나 스펙으로 계산되는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노인은 별가치가 없어서 갈 데가 없다. 이제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아 죽음만 기다린다. 한국형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은 아무 가치가 없는 대신, 젊은 사람은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모으기에 바쁘다. 하지만 은퇴 전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노년에도 별로 하는 일 없이 사회적 자본을 이용하여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 가치로 인정하는 경험과 지속적인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신뢰가 짙은 인간관계 네트워크가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활용하고 생산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이 사회입지를 확보하고, 그에 따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사회자본은 사회참여로 형성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란 지속적 네트워크 혹은 상호면식이나 인정이 제도화된 관계’다. 부르디외의 정의定義는 일반적 정의보다 비판적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왜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고, 스펙을 따야 한다는 제도 자체가 사회적 자본을 불공평하게 분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젊은이들의 분노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19세기말부터 제국주의로 인한 고통 때문에 지배계층의 사회적 자본이 계속 변했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일본제국주의 침투로 몰락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지배계층이 생겼다. 해방 후엔 그 지배계층이 대한민국 설립에 깊이 참여했으며, 고도 성장기부터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지배계층은 갈수록 화석화되어 그 계층 진입이 어려워졌다. 지배계층에 진입하려면 더 많은 스펙이 필요하고 그 스펙을 따기 위해 자본이 필요하다. 1970년대와 80년대 학번은 교수, 건축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중에는 어렵게 살아온 지방출신들도 많다. 그들은 가난을 딛고 코리안 드림을 통해 사회에서 성공했다. 요즘 사람 중에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계층이 생겼다. 반사회적 행위라기보다 사회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행위다. 한국사회에서도 계층 간 갈등이 심하다. 한국의 변화가 그 만큼 빨랐기 때문에 갈등이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지만, 희망을 주지 못하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독재정권 때문에 부와 권력 분배가 한계가 있었다. 독재정권은 민의民意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서 권력을 남용하여 유지한다. 이를 위해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에 무언가를 계속 주어야 한다. 금전적 혜택부터 일자리까지 뇌물은 다양하다. 독재정권이 약해지면 혜택을 덜 받는 계층이 먼저 이탈한다. 독재정권하에서 혜택 받는 사람이 많으면 오래 갈 수 있지만, 경제가 성장하지만 혜택을 받지 않는 다수의 반발이 시작된다. 미국의 밀레니엄세대와 같은 한국의 젊은 층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 선진국가에서 태어난 세대이므로 독재도 모르고 빈곤도 모른다. 청소년 때 인터넷을 접하고 20대 때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자유선거, 아파트, IT, 해외여행, 외식, 지하철, 고급까페 등은 흔한 경험이어서 생존이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무리한 스펙경쟁을 포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은 건강한 희망을 찾기가 어려운 사회가 되었으며, 사회적 노력 없이는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문제는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젊은이는 소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부와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
'건강하고 희망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와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에 형성되어야 한다. 누가 그것을 하겠는가? 그것은 정치가 또는 정부가 시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 권위주의가 사회 전체에 뿌리 내리고 있지만 80년대 민주화 운동,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역사를 볼 때 그 잠재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올바른 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사건에 반응하고 감정적 이슈를 찾아내어 떠든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제도를 통해 자기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안에서도 의견이 다양하다. 민주주의는 종교처럼 믿음을 요구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민의民意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제도를 통해 반영한 민의를 인정하고 거기에 승복해야 한다. 민의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판단력이 더 우월하다는 의미인데, 이 또한 독재와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는 결과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민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은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다.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 사회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관심도 높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코리안드림은 지도자나 사회지도층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강한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다. 공동체 지도자가 구성원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집단들이 많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공동체의식 속에 비민주적 집단주의를 민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고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의 생각, 개인의 선택, 개인의 책임에 중심을 두므로 개인의 존재를 인식해야 하며 개인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편 가르기가 심하다. 우리가 아니면 타자화他者化한다. 타자他者는 자기가 아닌 사람이고, 사회는 타자가 서로 협력해서 만드는 것이다. 타자화라는 것은 자기와 다른 집단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 또는 공격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와 비슷한 집단의 단결을 꾀하게 되고, 그 단결은 연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타자화 된 집단에 대한 차별의 원인도 된다.
삶의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하며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젊은 세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는 정부나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다. 민주시민이 되면 작은 단위의 모임에 참여하여 다른 이들과 소통하면서 실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봉사활동도 자연스럽게 주위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집단주의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시민활동을 꺼린다. 윗세대는 공동체 의식이 강하지만 집단주의적 생각 때문에 민주주의 기본이 되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서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한국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그리고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2000년부터 스펙을 요구하는 교육이 확산되면서 다른 교양적 내용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약해졌다. 동시에 사교육이 확산 되었는데 사교육은 대학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교육이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스펙교육에 초점을 둔다. 사회적 공존은 보수층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교육관 때문에 건설적 논의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2008년부터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SNS에서 감정적 글을 올리는 것 외에는 별 행위가 없으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가 비록 한국 역사에는 민주주의 뿌리가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싸워서 스스로 얻은 것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고 앞으로 민주시민으로서 이를 지켜야 한다는 확신이다. 대한민국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이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와 그 바탕이 되는 자유다. 권력분산과 감시, 민주시민으로서의 참여의식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풀 뿌리운동을 확산시켜 시민참여를 통해 실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