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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불편한 진실 2

태어난지 18개월된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태어났고, 지금은 마스크가 없으면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 생태적 죄(ecological sin)를 인류의 원죄에 포함 시킨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였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 피조물중 하나가 힘이 세다고 하여 다른 피조물을 유린하고 말살하고 있는데 , 하나님이 ‘심히 흡족하다’고 하실까? 하나님이 지금 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이렇게 후회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내가 저 호모 사피엔스만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인데. 이게 원죄가 아니면 무엇이 원죄란 말인가? ’
 
지금 우리의 농사짓는 법은 대규모로 단일 품종을 한 곳에서 키운다. 넓은 지역의 모두 숲풀 등을 밀어버리고 원하는 작물 한 가지만 키운다. 만일 끝도 없이 펼쳐지는 바나나 농장을 생각해보자. 바나나 잎을 좋아하는 곤충이 있다면, 이곳은 그 곤충에게 별천지가 될 것이다. 바나나 잎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모두 여기로 모여들 것이다. 그러면 농부는 농약을 살포할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곤충들은 다음 해에는 면역력을 가져 농약을 뿌려도 잘 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더 독한 농약을 개발하고 곤충과 인간과의 투쟁으로 농부는 거의 독극물 수준의 농약을 뿌리게 될 것이다. 그 독극물은 주변을 오염시켜 결국에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자연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이다. 아주 작은 생명체의 독극물은 미미하지만, 그것을 많이 잡아먹은 더 큰 생명체의 몸에는 더 많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은 병들게 된다. 우리가 뿌린 대로 우리가 거두는 것이다. 총.균.쇠 작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야기한다. “농업은 인류의 역사에서 최악의 실수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 생명의 다양성을 말살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방법은 한 작물을 한 곳에서 대규모로 심는 것이다. 그렇게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그로인해 생명의 다양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도 생물의 다양성의 문제다. 25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24만년동안 호모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정말 별 볼일 없는 종種이었다. 지난 만여년 동안 농경을 시작하면서 급격히 성공한 동물이 되었다. 지구상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농경을 하기 전 인간의 존재감을 살펴보면, 1만여년 전에는 지구상에서 살았던 모든 포유동물 전체 무게의 1% 이하였다. 그러나 지난 만년 동안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통신혁명 등으로 인간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 지구상 인간의 무게에 78억 x 65kg에 그 외 인간이 사육하고 기르는 포유동물을 더하면 전체의 96-9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인간사회에 침투할 수밖에 없다. 야생동물 몸에서 살아가던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이주한 곳은 인간 혹은 인간이 기르는 소, 개, 닭, 돼지 등이다. 그러니 조류독감, 돼지독감, 코로나 등이 인간사회에 일상화가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 다양성의 불균형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이 인간사회다. 인간사회에서 인간이 기르는 가축, 애완동물도 포함된다. 그들의 생존 역사상 이런 블루오션은 없었다. 모두가 밀접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 바이러스가 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인간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한, 인간이 기르는 가축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한, 아니면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을 획기적으로 만들어주지 않는 한, 이제 인간사회에서는 이런 코로나사태 같은 일은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을 비로 잡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일상화 될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조류의 살처분, 돼지독감으로 인한 돼지의 살처분이 이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철새가 옮겨주었다는 AI바이러스는 철새가 인간사회에 감염시켰다는 아무 근거가 없다. 그 병균은 사람이 옮겼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어떻게 우리나라 멧돼지에 옮겨졌을까? 멧돼지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을 리도 없다. 비행기가 옮겼고, 자동차가 옮겼고, 사료가 옮겼고, 사람이 옮겼다. 어떻게 산속에 살던 멧돼지가 옮길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가축을 기르는 방식이 문제다. 유전자 다양성 고갈과 공장식 사육이 문제다, 알 잘 낳고 육질 좋은 닭, 소, 돼지를 만들기 위해 좋은 형질만 교배시켜 지금의 가축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기르는 가축들은 유전자 다양성이 사라진 거의 복제동물 수준이다. 한 마리만 감염되면 모두가 감염될 수밖에 없다. 가축을 기를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야생동물들도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 있지만, 특정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약한 동물은 죽지만 몰살하지는 않는다. 그 빈자리를 살아남은, 적자 생존한 유전자를 가진 자들이 메꾸게 된다. 이것이 야생이고 자연이다. 인간사회에서도 독감으로 일가족 몰살! 이런 일은 없다. 가족 개개인의 유전자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기르는 가축을 한 곳에 몰아 유전적으로 한 종을 만들어 놓았을까? 인간은 지구의 모든 것들을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마음대로 조작하였다.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고 점점 더 다양해진다’고 했다. 이런 이치에 따라 바이러스는 쉴 새 없이 변이가 일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해지고자 하는데, 그 자연 속에 사는 인간은 끊임없이 다양성을 말살하면서 이제 이런 팬데믹이라는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다양성 말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문화다양성도 말살하고 있다. 우리는 한 목소리를 내야만 편안해 한다. 일사분란, 질서정연 이런 것을 옳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불편해하고 싫어한다. 다양한 기질,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어 이 사회에 적합한 획일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다양성, 창의성을 말살시킨다. 그래도 기후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생명다양성 문제는 눈앞에 보이지도 경험하지도 않으니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 동물생태계의 하위계층인 곤충의 경우를 보면 종種수도 개체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곤충은 동물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그 곤충들의 종도 개체수도 줄어들면서 그 상위계층의 동물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생명체의 절멸사태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5백만년 전에 거대한 운석이 멕시코 앞바다에 떨어져 기후변화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공룡이 절멸하고 많은 생명체가 절멸하였다. 지금 제6의 절멸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제6의 절멸사태가 기존 다섯 번의 절멸사태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그전에는 천재지변과 관련이 있다면, 제6의 절멸사태는 인간에 의해 조용히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막둥이 호모사피엔스 종이 저지르는 행위로 인해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아마 제6의 절멸사태는 지구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태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함께 공유하고 살아가야 할 지구를 한 종種이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 인간에게 이러한 권리는 없다. 해마다 UN에서 지구를 위해 무슨 해라고 정하고 난리를 피우지만 관심 갖는 이는 별로 없으며, 구호로 그칠 뿐 성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고갈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법은 자연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운이 좋았던 것은 지금까지는 백신을 개발하는데 10-15년 정도 걸렸지만, 이번에는 1년 만에 개발했다는 것이다 생명과학자들의 협력으로 인류를 구원하고 있다. 하지만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난다면,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까? 당장의 해결방법은 손 잘 씻고 마스크 씌고 거리두기를 잘 실행하며, 장기적으로는 자연을 잘 보호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백신이다. 자연보호는 코로나에 대처하는 것처럼, 나 혼자 어느 한 개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동참해야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자연보호도 모두 함께 동참할 때 그 효능이 나타난다. 지금의 이 탐욕이 많고 이기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함께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가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지금의 사피엔스는 결국 절멸되고 말 것이다.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남는 존재가 된다면, 함께 공생하는 종일 것이고, 아니면 모두 절멸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종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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