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한강을 걷는다. 올해도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이제 한 장 남았다. 한 해 두 해 책장 넘기듯 쉽게 가버린, 설마 설마하며 보낸 세월, 이제 내 눈앞에도 벌써 황혼의 서리가 내리고 있다. 길흉사가 있을 때 마다 우리 감정은 더 확대되어 느끼게 된다. 그 순간이 계속될 것만 같고, 좋은 것은 더 좋고 나쁜 것은 더 나쁘게 느껴진다. 부모도, 부모를 돌보는 노년의 자식도 모두 외롭고 세상에서 소외된 것만 같다. 마스크를 쓰고 오가는 사람 모두가 다 외롭고 소외된 것만 같다. 오늘 찬란히 빛나는 가을 햇살이 왜 이리 虛한가? 마음 밑바닥에서 쓸쓸한 가을 찬바람이 불어온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어려움은 관심 부족이다. 노인이 되면 더욱 그러하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노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생명도 연장되면서 노인인구는 급증하고 있지만, 사회에서도 가족으로부터도 점점 관심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노년의 가장 큰 고통중 하나가 고독이다. 치매의 원인중 하나가 고독,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서적 지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정서적 지원은 인간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서적 지지가 생명의 기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정서적 지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정서적 지지가 관심이다. 어린 아이의 애착결핍도, 노인치매의 상당부분도 정서적지지의 결핍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인이든 아이든 현대인의 삶 자체가 이제는 관심을, 정서적 지지를 돈으로 구매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는 것도 관심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지자가 되고, 관심을 주는 것이다. 인간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다음 내용은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를 참고로 정리한 것입니다.
“ ... 생활환경의 변화로 개인적 관심서비스분야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아이들, 노인, 장애인, 우울증이나 소외감으로 외로운 사람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누군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그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건강한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보살펴 주고, 관심을 갖고 감독해 주는 서비스 직종이 ‘관심산업’이다.
이런 관심산업의 성장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안일을 외부에 의뢰하는 경우가 늘었고, 두 번째는 자동화와 정보통신의 발달이다. 공장에는 각종 기계와 로봇이 있고 서비스 분야에도 자동현금입출금기, 자동응답시스템 등이 있다. 그런데 이 기계가 못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개인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 일이 기계로 대체된 많은 사람들 역할에 대해 개인적 관심판매서비스업이 나서고 있다. 사람이 가져주는 관심이 나를 더 즐겁게 해주고, 그런 관심이 없으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 역시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웨이터가 여러 가지 말을 해주는 식당을 더 좋아하고, 판매사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백화점은 싫어한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가격에 따른 관심의 차등을 한번 생각해보자. 가장 가격이 낮은 형태의 관심에는 사람의 요소는 전혀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보내주는 정도이다. 돈을 더 내면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로봇이나 아니면 3차원 홀로그램으로 영상으로 사람이 보이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 목소리는 매우 짧을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이제는 콜센타 직원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이 직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에 관한 정보를 뽑아내어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유용한 정보도 제공해 주고, 당신이 특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할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집이나 회사로 사람이 찾아올 수도 있다.
성공적인 개인과 기업을 위한 컨설턴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개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시간이 없다. 19세기 후반 길드시대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하인들 덕분에 과시적 소비를 보여주며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 역할에서 면제되었고, 먹고 노는 데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의 부자들은 돈은 많지만 시간적으로 가난하다. 따라서 이들의 사치는 다르다.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관심이다. 이들보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의 많은 부분을 제공하는 과학기술에 의존한다. 그러나 부자를 위한 서비스보다는 인간적인 요소가 적다.
항공사들은 다른 업체와의 경쟁 때문에 지출에 민감한 고객에 대해서는 항공요금을 인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료효율성이 높은 엔진, 전산으로 운영되는 예약 등 기술발전이 있었기에 요금인하가 가능하다. 그러나 덜 내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전보다 사람의 서비스는 덜 받는다. 항공기 승객중 최상층 고객들은 9%밖에 되지 않지만, 수익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44%가 된다. 극진한 관심서비스의 대부분은 서비스를 받으면서 동시에 돈을 버느라 바쁜 사람에게 돌아간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간이 줄어든 이 시대의 사치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이다. 가장 극진하고 값비싼 대접은 믿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한 달에 몇백 달러를 내고 개인코치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라면, 아마도 단순한 조언이나 충고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해서만 있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실제로 친구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일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좋은 친구가 지금 곁에 있다면 대단한 행운이다.
개인코치 이외도 개인카운슬러, 정신적인 조언자, 각종 치료사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누구나 가끔은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느낀다. 진짜 친구나 가족은 이를 충분히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치료사를 찾는 사람들을 아직도 우리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문 외딴 곳의 솔잎 향기, 그윽한 공기를 호흡하고 숲속을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곤 하며 휴가를 즐겼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다. 요즘은 '자신에게 잘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서비스를 자신에게 스스로 하라는 말이다.
바쁜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정도의 관심과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경제적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에서 면제된다. 가족들의 말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이 그들을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보살핌 중에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사람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비스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비용이 없을 때 줄여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서비스다. 노인과 아이들 뿐 만아니라, 환자나 장애인도 관심과 보살핌의 관계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의 건강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다. 양로원은 단순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관심보호서비스는 많이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보호의 목적은 혼자 남겨질 경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을 단지 안전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관심보호는 환자와 관계를 쌓고 고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상호교류하며, 때로는 그들과 접촉하고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누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65세가 되는 현시대에 노인인구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新경제의 여파로 자녀들에게 조차 필요한 관심을 베풀어 주기 힘든 근로가정에, 이러한 노인 붐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 전체로 보면 노인 한 명을 돌볼 젊은이의 수가 줄어든 것이다. 모든 노인들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 다시 말해 목욕, 식사, 욕창세척, 외출, 기저귀 교환 등의 일도 어려울 것이며,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개인적인 관심을 주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많은 아이들 역시 노인 만큼이나 관심부족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도 단순 보호시설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더 좋다. 그러나 여기서도 돈과 관계가 있다. 돈을 내야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이 낮은 시설은 한 명이 돌보는 아이들의 수가 많을 것이며, 직원들도 수준이 낮고 직장 이직율도 높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많은 돈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어린이집에서 올바른 보호치료와 돌봄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는 정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설 역시 영리기업이기 때문이다. 영리기업은 주주들에게 높은 수익을 돌려주어야 한다. 개인적인 관심을 파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이므로 대량생산도 할 수 없다. 개인적인 관심은 1:1 서비스이고, 좋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시간도 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에 비해 보상은 적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누구도 잘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비스사업에서는 배려심 있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적극적인 사람이 환영을 받는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대로 받기위해서는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개인적 관심서비스 분야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불균형 현상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비스는 받을 형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서비스가 몰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新경제에서의 일의 구성 및 보상방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오랜 시간을 더 열심히 일하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급박한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가족을 위한 공간은 줄어들면서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과거 가정 내에서 하던 일을 외부에 맡기고 있다. 한때는 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식들이 하는 일로 여겨졌던 정서적지지, 개인적 관심서비스가 이제 빠른 속도로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와 서비스를 구매할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제공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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