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동안의 구속에서 풀려나 마음 편하게 산책을 한다. 자유롭게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 주변의 행복이 보인다. 모든 것이 차려져 있으면 그것이 일상이 되면 일상에서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만 같다. 오늘 아침 햇살의 눈부심이 행복이다.
지난 2주간 참 많은 경험을 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던 장인어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몸속에서 핏줄이 터졌으며 수술을 하기도 어렵다며 응급실에 계셨다. 장인어른은 지난 몇 년간 치매 걸린 장모님을 돌보셨다. 위독하신 장인어른에게도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집안의 장모님에게도 보호자가 필요했다. 병원에는 처남부부가 교대로 지켰고 장모님은 우리 부부가 돌보게 되었다. 장모님은 나쁜 침해를 앓고 계셨다.
나쁜 치매는 단순히 인지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모든 것이 불만이며 가족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심하게 외로워하며 또 모두를 의심한다. 주변 모든 사람을 의심하면서도 잠시라도 곁에 누가 없으면 심하게 불안해한다. 어두운 밤이 무서워 잠을 잘 자지도 못한다. 그러니 가족들 조차도 누구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장모님 곁에 장인어른이 계셨고 모든 것을 받아주셨다. 며칠 동안 장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힘든 경험을 했다. 정말 우리 장모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현대의학의 발달은 육체적 생명은 연장시켰지만 뇌의 질병은 아직 어쩔 수 없다. 뇌가 정신이고 자아다. 뇌가 병들면 자아는 없다. 단순히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별문제가 안된다. 만일 나쁜 치매가 걸린다면 가족 전체의 삶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가족은 해체 된다.
나쁜 치매는 심한 외로움과 일상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아온, 그래서 그것이 습관화 됨로써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외롭고 모든 노인은 더욱 외롭다. 혼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고, 일상의 불편함에 대해 남 탓을 하고,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하는 삶이 습관화 되면 나쁜 침해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뇌의 건강이 중요하다. 뇌의 건강이 정신적 건강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고독을 즐길 줄 알며,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다.
뇌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뇌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우리 몸은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려 한다. 뇌가 감정을 만들고 정서를 만들고, 생각하고 행동을하게 한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내 삶이 결정된다.
“... 뇌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 미리 정해져 있는 능력과 반응의 꾸러미를 지니고 있다. 뇌는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지휘하고, 상호작용 결과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통해 변화한다. 뇌는 수많은 서로 다른 시간척도 위에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인생단계를 거치면서 의식하는 시간척도가 있다. 이 척도 위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법을 베운다. 또 깨어있는 동안 대부분 의식 못하는 사이에 밀리초 단위로 일어나는 엄청난 처리 과정이 존재한다. 뇌는 끊임없이 자기의 주변을 지각해서 그로부터 일관성 있는 모형을 구축한다. 그래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뇌는 감각을 통해 수신한 신호를 해석하고, 그 신호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 낸다.
지각perception은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모든 신념체계 구축의 밑바탕이며, 신념은 하위 인지기능 만큼이나 선천적인 생물학적 제약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하늘이 파랗다고 믿는다’는 심오한 신념까지 당신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물리적 피상이든,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을 지각하고 그 입력을 처리하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달려있다. 결정을 내리고 협력을 하고 창조하고 발명하고 가설을 세우는 능력은 여기서 나온다. 의식, 성격, 인생은 모두 궁극적으로 현실에 대한 만족스러운 버전을 구축하는 뇌의 능력에 달려있다.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뇌의 독특한 왜곡. 내재되어 있는 필터와 인지편향 등 자기만의 맞춤형 현실에서 살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정확한 스냅 사진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지각의 차이는 대체로 맥락, 기존경험, 기대 등을 바탕으로 한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각은 구성된 것이다.
매일 경험하는 하루는 모든 감각을 통해 뇌로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모든 정보는 당신이 기존에 세상을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느냐는 당신의 색안경을 통해 처리된다. 지구위에 7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현실도 70억 개 이상의 현실이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 이 현실이 아닌 현실이 우리가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지휘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 모든 것은 뇌의 물리적 구성과 과거 경험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고유의 환각을 바탕으로 지각된다. 지각이란 셀 수 없이 많은 인지 기능들의 근본이다.
세상에 대한 지각이 개개인의 인생의 고유한 경험 때문에 제각각 일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정보처리방식에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방대한 지각을 처리하지만 지름길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지름길이 때로는 오류로 이어진다. 어째서 뇌는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환상을 다루는가? 뇌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지각은 뇌가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사실상 무한히 많은 과제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뇌는 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잔재주를 진화시켰다.
뇌는 일부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정보는 무시한다. 기존의 경험으로 신호를 걸러내어 어떤 것을 처리할지 분류한다. 이 분류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뇌는 지속적으로 기존경험을 끌어들여 지각한다. 이것은 생존에 크게 기여하는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구성물이다. 심지어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에서도 모든 사람이 무한히 많은 자신만의 버전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물려받은 뇌 회로와 환경에 의한 학습 사이에 복잡한 상호작용이 진행되고 있다. 뇌는 지식을 습득하면 세포가 연결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생각의 경로를 만들어 낸다. 세상에 대한 예상은 기존 경험의 총합에 불과하다....“ ( 한나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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