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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복권을 사는 것은 희망을 사는 것이다. 혹시나 하며 상위 1%의 삶을 기대하는 것도 희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이란 이룰 수 없는 것 아닐까? 희망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삶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희망은 그 다음 희망으로 이어져야 한다. 인간은 계속 건너가야 하는 존재다. 삶이란 끝없는 변화다. 희망의 다른 말이 꿈이다. 꿈은 살다보면 세월 따라 환경 따라 변한다. 꿈은 내 삶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북극성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꿈이 중요하다.

 

나이 들어 되돌아보면 해놓은 것은 없는데 삶의 끝은 점점 빠르게 다가온다. 부모가 자식의 꿈이고 모델이 될 수 있다면 대체로 성공한 삶이다. 좋은 부모란 재물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재능이 있는 부모만은 아니다. 생각이 반듯하고 행동이 반듯하고 그래서 반듯한 삶을 살아가며, 자식에게 본보기가 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 생각한다. 그러면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갈 것이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다. 자식을 키울 때 아이들 삶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재물이니 명예니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의외로 부모가 아이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들도 많다. 나는 인간의 소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가정을 짓는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가정이 좋은 사회를 짓고, 좋은 세상을 짓는다.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삶의 희망을 갖는 것이다.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상적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삶을 부모가 떠맡아 방향을 정해준다. 비정상적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한다. 일찍부터 삶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어떻게 하든 삶의 희망을 갖게 하고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이들이 꿈을 갖게 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몰입할 절절한 무엇이 있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어른에게 꿈이란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신경질환은 환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프로이드가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에,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인간이 우스광스럽게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나치 수용소에서 경험했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의 순간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프랭클 박사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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