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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지각하는 뇌 1

 

뇌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 미리 정해져 있는 능력과 반응의 꾸러미를 지니고 있다. 뇌는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이 방식을 지휘하고 상호작용결과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통해 변화한다. 뇌는 수많은 서로 다른 시간척도위에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인생단계를 거치면서 의식하는 시간척도가 있다. 이 척도 위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법을 베운다. 또 깨어있는 동안 대부분 의식 못하는 사이에 밀리초 단위로 일어나는 엄청난 처리과정이 존재한다. 뇌는 끊임없이 자기의 주변을 지각해서 그로부터 일관성 있는 모형을 구축한다. 그래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뇌는 감각을 통해 수신한 신호를 해석하고 그 신호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 낸다지각perception은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모든 신념체계 구축의 밑바탕이며, 신념은 하위 인지기능 만큼이나 선천적인 생물학적 제약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하늘이 파랗다고 믿는다는 심오한 신념까지 당신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물리적 피상이든,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든 자기 밖에 존재하는 것을 지각하고 그 입력을 처리하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달려있다. 결정을 내리고 협력을 하고 창조하고 발명하고 가설을 세우는 능력은 여기서 나온다. 의식, 성격, 인생은 모두 궁극적으로 현실에 대한 만족스러운 버전을 구축하는 뇌의 능력에 달려있다.

 

객관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뇌의 독특한 왜곡. 내재되어 있는 필터와 인지편향 등 자기만의 맞춤형 현실에서 살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정확한 스냅 사진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지각의 차이는 대체로 맥락, 기존경험, 기대 등을 바탕으로 한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각은 구성된 것이다. 매일 경험하는 하루는 모든 감각을 통해 뇌로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모든 정보는 당신이 기존에 세상을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느냐는 당신의 색안경을 통해 처리된다. 지구위에 7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현실도 70억 개 이상의 현실이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 이 현실이 아닌 현실이 우리가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지휘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 모든 것은 뇌의 물리적 구성과 과거 경험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고유의 환각을 바탕으로 지각된다. 지각이란 셀 수 없이 많은 인지 기능들의 근본이다.

 

세상에 대한 지각이 개개인의 인생의 고유한 경험 때문에 제각각 일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정보처리방식에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방대한 지각을 처리하지만 지름길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지름길이 때로는 오류로 이어진다. 어째서 뇌는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환상을 다루는가? 뇌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지각은 뇌가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사실상 무한히 많은 과제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뇌는 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잔재주를 진화시켰다. 뇌는 일부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정보는 무시한다. 기존의 경험으로 신호를 걸러내어 어떤 것을 처리할지 분류한다. 이 분류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뇌는 지속적으로 기존경험을 끌여 들여 지각한다. 이것은 생존에 크게 기여하는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구성물이다. 심지어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에서도 모든 사람이 무한이 많은 자신만의 버전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물려받은 뇌 회로와 환경에 의한 학습사이에 복잡한 상호작용이 진행되고 있다. 뇌는 지식을 습득하면 세포가 연결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생각의 경로를 만들어 낸다. 세상에 대한 예상은 기존 경험의 총합에 불과하다.

 

뇌가 현실에 대해 일관된 착시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현병 환자는 망상이나 환각 같은 증상을 통해 왜곡된 지각을 경험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은 일반적으로 합의된 신념과 조화되지 못한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이게 된다. 조현병 진단을 받는 사랑의 뇌를 분석해보면 학습, 기억, 추론, 유연성, 고등인지 조절에 관여하는 회로인 해마와 전두엽에 신경연결이 더 적은 것으로 나온다. 이것은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정보를 걸러내고 이 정보를 이용하여 자기가 현재 경험하는 내용에 대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하드웨어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이 결함으로 인해 감각을 통해 걸러지지 않은 온갖 정보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세상은 혼란스러운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세상에 대한 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은 인류 전체에서 합의된 신념과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현병 환자의 뇌에서는 생리적 회로와 인생 경험사이의 상호작용이 재앙을 일으킬 만큼 편파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조현병은 유전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유전암호가 결함이 있는 단백질을 만들어 정신의 연결상태에 장애를 일으키고, 세상을 학습하고 기억하고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 신뢰할만한 현실을 확립하는데 문제를 일으킨다. 이 환경요인은 임신 중 감염이나 약물이다.

 

데이비드 너트는 신경정신약리학 교수다. 그는 중독, 불안장애, 수면에 관한 전문가다. LSD약물이 뇌 전체에 스위치 켜는 것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큰 시각적 환각을 경험하고 분석적 사고를 할 수 없고 흥미도 사라지고, 자아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뇌는 기존 경험으로 학습한 것을 기반으로 일을 한다. LSD는 조현병의 환각과 망상을 약화시킨다. 모든 환각제는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시각정보 처리를 방해한다. 사물의 모양, 색깔 왜곡, 거미줄 형태의 환각 등을 경험한다. 평소 소통하지 않던 뇌 영역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환각 세계가 만들어진다. 현재 실험을 통해 환각제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독, 우울증 치료 방법으로 유망하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환각제를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은 지각과 신념형성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각회로에 변화를 주어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 삶의 부정적인 영향을 만들어내는 병든 신념을 더 건강한 신념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현실이 객관적이고 불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현실에 대해 우리가 믿는 내용과 현실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훨씬 유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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