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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1. 자유의지냐 운명이냐?

우리는 자유의지와 온전한 의식을 갖추고 있는 주체인가? 아니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기도 모르는 구동장치로 움직이는가미리 프로그램 된 존재인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가?  현대의학은 인간의 몸속에 입력된 것들이 각자가 물려받은 유전자와 상호작용해서 그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는 유입되는 신호를 유전자에 의해 배선된 회로를 통해 처리한다. 수많은 문화에서 운명은 대단히 전능한 것이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국가, 계급, 인종 같은 제약이 존재하지만, 그런 맥락 안에서는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라 믿으면서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선택하는 것들이 쌓여 점점 행동방식과 습관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삶을 구성하는 경험의 집합체로 진화해 간다.

 

인간은 기억과 언어, 이야기를 이용하여 삶을 합리화하고 또한 삶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존재로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의사결정과 일상적인 판단의 상당부분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자기에게 닥친 결과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인간은 강력한 무의식의 힘뿐만 아니라 외부요인들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은 가정환경, 교육수준, 어린 시절 경험 같은 주변 환경이나 타인이 자신의 성격과 인생의 결과를 빚어내는데 역할을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불행한 어린 시절이나 비극적 인생의 사건으로 고통 받았더라도 그런 과거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그런 회복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환경이나 인간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 내는 법이 무엇인지에 관해 심리학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선택은 기존경험과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사이의 무한한 상호작용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의 핵심에 뇌가 있다. 뇌는 살면서 겪는 경험에 반응해서 발달하고 평생변화를 이어가지만, 갓 태어난 아기의 뇌도 이미 신경회로 형태로 그 토대가 깔려 있다. 개개인에게는 스스로에 대해 만들어낸 이야기 말고도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존재한다. 인간의 뇌가 성격, 신념, 혹은 인생의 특정 사건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한 행동을 두고 생물학적 측면과 심리적 혹은 문화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서로 뒤죽박죽 얽혀 있기 때문이다” ( 로버트 새폴스키처신’)

 

나는 세상 현실에 대한 인간의 개별인식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려 한다. 불행한 사람들의 경우 생물학 자체가 운명이 되어버리지만, 생물학은 원인과 결과의 방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음식 선택, 사교성 같은 성격의 한 측면인 친구관계, 스타일 혹은 신념 문제는 여기까지 기여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아주 미묘하고, 서로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또한 대단히 교묘해진다. 그냥 운명이라는 개념에서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비극적 암시를 덜어내고, 도달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종착지라는 개념으로 운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삶은 알고 있는 것 혹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신경생물학에 의해 결정된다. 사랑, 우정, 사회구조가 어떻게 신경생물학에 의해 주도 되는가? 인간의 뇌가 평생 어떻게 발달하고 학습되는가? 지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세상에 대한 신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우리가 갖고 있는 특성 중 어떤 것이 변화가 용이한 부분이고 어떤 부분이 우리 삶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노인의 뇌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탄생한다. 새로운 신경로가 형성되어 새로운 생각을 뒷받침한다. 이런 가소성으로 행동과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 평생유지가 가능하리라 해석하고픈 유혹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일반적이지 못하다. 성장형 사고방식이 사회에 퍼져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퍼지게 된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꿈을 꾸면 꿈이 현실이 된다는 슬로건은 설득력이 없다.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의사결정들이 합쳐져 행동을 이루고, 자아와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재료로 누적된다. 인간이 내리는 의사결정 대부분은 의식수준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결과다. 어쨌든 의식으로 통제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인간 행동은 어떤 것이든 그 원인이 다원적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고칼로리 고당도 고염음식을 선호하게 되어 있지만 이것 말고도 평생에 걸쳐 형성된 온갖 식습관이나 기호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순간에도 당신의 뇌는 카페에 앉아 무의식 수준에서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를 입력 시도들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 호르몬 수치도 당신이 얼마나 지친 상태인지,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일상의 사소한 의사결정도 복잡할 뿐 아니라 대체로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같은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진다. 이런 인지과정은 훨씬 긴 시간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많은 뇌 영역이 가동된다어떤 단일행동, 선택, 인생결과가 유전자에 의해 운명 지워져 있다거나 날 때부터 결정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뇌의 구축방식과 평생에 걸쳐 뇌의 작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쉬운 경향을 갖게 된다사소한 결정도 생물학적 욕구와 학습된 경험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이 자기만의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중 상당부분은 매일 행동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인생의 선택과 성격을 만들어 내는 수백만 개의 결정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성격적 특성과 행동은 변할 수 있는가왜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부정적인 인생사건을 겪고도 훌훌 털어버리고 잘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가? 인생에서 전체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는 무엇일까? 과학은 인간 모두가 신경생물학에 휘둘리며 특히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주장한다. 인간행동은 깊은 욕구가 작동하고 이런 욕구들은 대체로 인간통제를 벗어나 있다. 개성적 측면이라고 하는 부분도. 후천적 산물이고 의식적 통제아래 놓여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선천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 권한이 약해져서 사회적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믿음을 포기한다면 사회에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지구에 사는 70억 개의 상호연결 된 네트워크의 처리능력으로부터 규모의 집단적 경험이 등장하고, 이것이 진화적 변화를 주도하며 다양한 인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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