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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리스 시륄니크지음, 정재곤 옮김)

탄생이전

정신분석가는 엄마의 부재로 인해 안정감의 토대를 상실하고 이 때문에 발달장애를 받을수 밖에 없었던 버려진 신생아들의 의존적 형태를 이야기한다.  신생아들이 나타내는 불안감을 관찰한 그들은 이런 아기들이 낯선 사람을 대하면 공포를 느끼고 이러한 반응이 8개월째에 이르러 급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런한 사실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일 관찰자가 '모든 중국인은 닮았다.' 라고 말한다면 이는 관찰자가 몇몇단서에 국한하여 관찰했음을 의미한다. 관찰자의 태도가 바뀌면 관찰하는 대상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어떤 관찰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넘어진 것을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드는 태도에 기분이 상할 것이며,  또 어떤 관찰자들은 감정적으로 너무나 격앙된 나머지 자연법칙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비교행동학의 첫 단계는 단순한 관찰에 그칠 수도 있다.  비교행동학의 두 번째 단계는 즉 방향성을 지닌 일련의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길질 당한 여인에 대한 해석이나 이후 행동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녀가 우리의 관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알 필요가 있다.

 

관찰자는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수준에 맞춰서 관찰할 따름이며 무의식이 이끄는대로 태도를 결정할 뿐이다. 관찰자는 자신이 조약돌을 관찰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조약돌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있는 셈이다. 관찰자가 바뀌거나 관찰자의 두뇌 혹은 그 사람이 지나온 과거나 무의식,  아니면 그저 지적 태도만 달라져도 관찰의 양상이 바뀌고 현실로부터 전혀 뜻밖의 놀라운 사실들이 도출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관찰한 바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귀로 들을 있게 된다. 모든 생명체는 정보를 선별하여 취함으로써 현실로부터 공상적인 기억을 만들어 낸다.

 

일찍 엄마와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제스처가 격렬하고  더욱 소란스러웠을 뿐아니라, 미소짓고 포옹하는 방식도 강렬하다. 요컨대 아이는 아주 어릴 때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대인관계의 틀을 형성하며 차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기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궁내 아기들은 이미 신경심리적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경험이 없어도 주변환경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감지하고 처리하고 구조화 할 수 있다. 새끼 갈매기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자기 부모의 울음소리를 알아낸다.  새끼 갈매기는 어미의 울음소리를 처음으로 듣자마자 잠에서 깨어 뒤뚱거리며 다가간다.  하지만 다른 갈매기의 울음소리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자궁내의 시각적 여건에 대해서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자궁내가 시계가 좋지 않고 어두울 것이라 짐작한다. 자궁에 비쳐지는 빛은 어두운 붉은 색조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숙아들은 태어나자 마자 응시할 줄 알고 20센티미터내에 있는 움직이는 발광체를 따라 시선을 옮길 줄 안다. 자궁내의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은 액체를 매개로 한 음행 전파 의해 이루어진다. 한편 물은 훌륭한 전도체다. 오사카공항 근처에 살았던 임산부들의 아기들은 비행기 소리에 익숙해서 태어난 뒤에도 오히려 조용한 환경에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이런 비근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보내는 석달동안 엄마의 말소리를 감지할 뿐 아니라,  엄마의 목소리가 가진 음악성에 익숙해지고 또 바깥세상 소리를 듣는다. 아기가 우리를 보고 우리의 말을 들으며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아기는 우리에게 사랑받는 인격체가 된다. 부부사이의 금실을 좋게해 주는 아이, 기쁨이 없는 나에게 행복이 되어준 아이,  어렵게 살아야 했던 나 대신에 성공해야만 하는 아이등등. 아기가 부모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한다. 자녀를 왕처럼 받드는 문화 환경에서 아이를 개별 인격체로 대접해야지 결코 부모의 열망을 짊어진 존재로 봐서는 안된다. 하지만 부모의 열망과 전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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