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마지막 순간

삶은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활기요 움직임이다. 생명의 기운이 고갈되면 피부는 한번도 보지 못한 형체로 변한다. 익숙한 얼굴이 낯선 타인처럼 보인다. 죽음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오랜 순간에 걸쳐 이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된다. 몸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 계속 활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시는 작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멈춰버리면 우리는 죽었다고 말한다. 복합시스템으로서 몸의 조직이 와해된 것이다우리는 매 순간 죽고 매 순간 새로운 자아로 거듭난다변화의 큰 파도에 대한 통찰은 눈을 번쩍 뜨고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일순간 바라본다. 나는 50년 전의 내가 아니다. 10년 전의 나도 아니고 작년의 나도, 어제의 나도 아니다(우리의 육신은 매일 수많은 세포가 죽고 수많은 세포가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육체는 병든 부분을 고치고 생명이 다한 세포들을 교체하고 외부 세력에 대해 몸을 방어하기 위해 언제나 전력을 다한다. 정신도 그러해야 한다. 매일 우리의 지식체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을 수리하고 낡은 부분을 새롭게 교체해야 한다. 육체의 생존을 위한 활동이 멈출 때 욱체는 죽은 것이다. 정신 역시 생존을 위한 활동을 멈추면 죽은 것이다.) 사람은 그저 몸이 아니다. 사람이 몸을 갖는 것이다. 저 주검은 다정했던 누구의 몸이요, 그 동안 공유했던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앞에 놓여있다. 그간의 세월과 상처, 병마와 싸우며 생긴 흔적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기를 남들보다 더 젊고 강하고 더 늘씬하고 더 예쁘기를 바라며 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다. 당신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쪼그라진 몸과 마주한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당신의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 깨닫는다. 죽은 이를 추억하며 동시에 우리도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인간은 잠시 그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경이로움과 참사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 돼는 존재다.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울부짖으며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 우리기 지금 뭘하든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에는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간의 시신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종류의 벌레가 엄격한 순서에 따라 물결처럼 모여든다. 처음에 들이닥치는 물결은 특정 검정 파리와 집파리다. 사망하고 수분이내 몰려들기 시작한다. 검붉은 눈을 번뜩이며 어둡고 따뜻한 구석에서 알을 낳는다. 유충은 금세 부화하여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 죽었던 몸이 새 생명의 탄생지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 돌물의 몸이 다른 동물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다. 우리 몸은 우리가원하든 않든 재구성된다. 분해되고 혼합되고, 용해되어 사라졌다. 다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대기에서 대지에서 한 조각씩 떼어 간다. 평생 모아온 지혜, 기억의 파편 하나하나가 탄소 원자로 방출되고 물방울이 되어 땅 속으로 스며든다. 모두 녹아나와 새롭게 결합한다. 과거의 조각들이 다시 무엇으로 탄생한다. ‘기억해라. 그대는 죽어야 할 운명임을‘  리소메이션(resomation) 은 리소머 resomer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몸의 부활을 뜻한다. 에피쿠로소의 말처럼 죽음은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직접 경험하지 않으니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나는 지난 60년동안 내 몸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지켜보았다나는 아이에서 청년으로 노인으로, 팔팔한 몸에서 골골한 몸으로, 매끄러운 피부에서 쭈글쭈글한 피부로 변했다. 내 몸의 어떤 부분을 소심하고 어떤 부분은 손상되었다.

 

애통은 당신을 아프게 한다. 아프다 말거나, 어쩌다 잠깐 아프다 마는게 아니다. 그냥 아프지 않는 순간이 없다그런 사람에게 이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그는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갔어. 너도 그만 털고 일어나야지애통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은 일이 자꾸만 벌어진다. 다시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약을 먹은 것처럼 멍하다.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다.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나는 '그가 죽었어'라고 생각하고 깊이 숨을 들어마시고 나침반을 다시 새로운 세계로 맞춘다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는 그냥 텅 비어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자잘한 일상이 당신은 그립다. 이럴때 하지말아야 할 말이 많다.  ‘그는 좋은 곳으로 갔어 울지만 등등...’ 애통 과정에는 늘 후회가 따른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애통은 후회라는 마음이다. 분노하는 마음이다. 종교가 애통을 고쳐주지 못한다. 어떠한 설명도 애통을 고쳐주지 못한다. 조언도 마찬가지다. 애통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흉터가 남는다.

 

유리에 부딪친 빗방울이 저마다 다른 줄기로 흘러내리듯 한탄은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한다. 새 생명을 낳기위해 겪는 진통처럼 떠나간 사람을 온전히 보내기 위한 시련의 시간이다.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수록 고통스런 삶이 지속된다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주하고 물어야 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당신이 괴로워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이다우리는 모든 게 바뀌어버린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 상황을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상황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 한다. 우리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죽으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가장 지키고 싶어하는 것도 결국엔 잃고 만다. 더 이상 잃을게 없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인간적 두려움, 남들의 시선, 자존심, 체념도 별게 아니다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에 일시적으로 덜러붙은 헐거운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해체되고 사라진다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봄 가운데 싹을 틔운 꽃망울, 가을산을 물들이는 단품, 산비탈에 걸린 석양, 스러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더 아름답다. 우리는 위태로운 삶을 소중히 여긴다눈 앞에 덧없이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삶에 간절히 매달린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름답다고 한다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 뺨에 와 닿는 바람결, 물 한모금, 힘없이 떨어지는 단풍,아침 이침 풀잎의 이슬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 당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죽음을 계획하라.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죽음이 보이면 하고 싶은 것들을 작성하라. 누가 보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 어디를 가고 싶은가?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가? 가족, 친구에게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편지를 쓰라해가 바뀔 때 그의 삶이 바뀔때 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 가족,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한폴더에 보관해 두는게 좋다. 작별인사, 한두 마디 조언이면 된다

 

*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대리인과 의사들이 당신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당신의 의도를 알면 시간 압박과 격한 감정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의 혼란을 덜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사람을 대리인으로 선택하라쓸모없는 의학적 시도를 거부하고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과감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어떤 소리를 들어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며칠  (0) 2021.02.08
마지막 몇주  (0) 2021.01.28
마지막 몇 달  (0) 2021.01.25
좋은 죽음  (0) 2021.01.21
저항  (0) 202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