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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저항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이 순간만큼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에서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은 순간이나 장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위험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우리는 죽었다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눈을 감았다거나 타계했다거나 이승을 하직했다고 기록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대해 대놓고 토로하지 않는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누구나 한때는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른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죽음도 두려워한다. 고통스러울까? 혼자 있게 되면 어떻하지? 저마다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가족에게 버림받을까봐, 추한 모습으로 죽을까봐천국이 없을까봐, 천국으로 들어서지 못할까봐? 기력이 쇠하여 누군가에게 의존할까 가족에게 짐이 될까? 하던 일을 마치지 못할까봐 두렵고 천천히 죽을까봐 두렵다아무도 당신을 그리워하지도 않을까봐 두려워한다어떤 사람은 통증을, 어떤 사람은 산소 호흡기를 두려워하고, 대소변을 못 가릴까봐, 홀로 땅속에 묻히는 걸 두려워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두렵다.

 

당신의 삶은 앞으로 30년이 남았는가? 아니면 단 며칠만 남았는가? 우리는 플랫폼 앞에서 수시로 시계를 확인하며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를 기다리듯 죽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어쩌면 갑자기 헤드라이트 불빛을 맞닥뜨리듯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삶을 훨씬 더 달콤하게 해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된다.  ‘육신은 언젠가 소멸 한다것을 알면 이승을 하직헤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달라질 것이다의사들은 희망 없는 환자는 돌봐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나만 빼고 그리스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고통을 겪는 근본원인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그런 두려움을 토로하고 부채질 하는데 적합한 곳이다.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힘이 드는가

 

낙관주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현재를 살아갈 힘이 넘쳐서 다른 건 무시하거나 잊고 산다. 고뇌하는 영혼은 죽어야 할 운명과 그로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은 생명원리다. 죽음은 세상만물에 똑같이 적용된다. 인간이라고 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삶과 죽음을 다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체는 벌레이며 다른 벌레들을 위한 먹이다. 인간은 불가피한 죽음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동물적 삶도 인식하는 동물이다. 서로 먹고 먹히는 죽음의 생태계에서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내적 삶에 심취하여 우주의 방대함도 인식한다과거와 미래를 알고 은하계의 우주와 종말도 안다. 무한한 우주에서 하찮고 덧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면서 우리의 문제가 시작되었다육체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꿈을 간직하고 끝내 스러진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만성적 불안과 싸우려하기보다 아예 무시한다공포는 우리에게 믿음과 관계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한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네트워크를 철학, 심리학, 과학, 문학, 종교, 예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불안함이 인간 문명을 창조한다철학의 기능은 불안의 실체를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죽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두려움을 꺼내어 보라. 군인들과 외과의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지 않고 대처하고자 갖가지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훈련한다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죽은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내가 죽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우리는 눈을 가리고 죽음을 반쯤 부정하고 산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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