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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죽음

자연은 참으로 무례할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하고 통지한다. 우리는 노화에 맞서려 노력한다자나 깨나 몸에 신경 쓰면서도 우리는 몸을 제대로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약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머리가 빠지고 근육이 빠지고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생기고 뼈가 약해지고 혈관은 굳어가고 감각기관은 둔해지고 정신은 흐려진다.이제는 무엇을 하고자 하려는 것도 없다. 생존자체가 목적이다. 검버섯과 주름투성이의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한때는 젊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도 전혀 못했다. 수행을 위해 삶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려고 하며,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을 운명에 처한 고통 받는 존재다우리도 변하고, 우리가 아끼는 것도 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변한다. (육체적으로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하니 언제나 번민이 생길 수밖에 없고 현실은 항상 고달프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항상 내일이 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은 젊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일을 기다린다. 그 내일은 내일일 수도 있고, 1년 후일 수도 있고 은퇴후 일수도 있고 삶의 힘든 시련을 겪은 후일 수도 있다나이들어 늙고 병든 후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때는 내일이 없다. 계획도 없다. 내년도 없다무엇을 꿈꾸고 행하고 그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모든 약속이 의미 없다. 오직 지금만이 있다. 차라리 그때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오히려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의 복잡하고 수많은 문제들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때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키케로가 그랬다.  “철학적으로 사색한다면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죽음이 남의 일로만 여겨질 때 죽음을 이야기 한다죽음이 내 이야기가 되면 더 이상 죽음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으려 한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하루하루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석같이 소중히 여기면 산다. ‘내일이 이 세상 끝나는 날이지 않기를 빌며 하루를 산다우리 모두는 틀림없이 일정기간동안 질병을 앓다 죽을 것이다물론 한 순간에 죽는 사람도 있다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기 몇 달 전, 며칠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람은 죽을 때 죽은 다음에 어떤 모습일까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여행을 준비할 때 안내서를 구해 읽어본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안내서다. 죽음 자체에 당신의 죽음과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에 좀 더 편해지고 싶으면 죽음과 친숙해져야 한다. 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 삶의 목표중 하나가 모나지 않게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이 순간이다. 살아가든 죽어가든 우리가 그 속에 완전히 잠겨있으면 그 순간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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