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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파울루 프레이리, 남경태 옮김)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1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이 처한 세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 힘을 개발하는 방법이 '문제제기식 교육'방법이다. 세상을 항상 고정된 상태가 아닌 변화과정으로서의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문제제기식 교육방법은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다. 대화란 인식론적 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대화는 앎의 방식이다. 그 앎의 과정인 대화는 상대의 성격뿐 아니라 사회적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그러므로 대화는 자연히 배움과 앎의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각자의 목소리는 자신의 경험에만 몰입하기 때문에 이분법적 사고와 경험의 담론에 무비판적으로 의지하며 고착화된 관념을 넘어서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화의 시공간을 각자 자신의 불평을 늘어놓는 자신의 치료공간으로 여긴다대화는 반드시 앎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 대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앎의 대상을 더 잘 알기 위한 수단이다. 대화는 각자의 체험을 우선시하는 좌담으로 변질되기 쉽다. 한 사람의 위치와 경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앎의 대상으로 끌어들일 여지가 사라진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습내용을 훈련시킬 교육적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새로운 지식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어떤 담론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핑계로 복잡하다며 불평하는 학자들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명료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담론이 있는 것처럼 가정한다. 명료함은 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의미형성 과정에서 그들의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겪은 일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다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자신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에 일체감을 느낀다. 언어의 명료함은 언어적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관념적 문제다. 단순명료한 언어를 요구하는 것은 복잡한 이론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이다학생들에게 비판적 담론에 접근할 기회를 빼앗게 된다. 관점 없는 중립성을 취하면 아무런 견해가 없는 것이다대부분의 피억압자들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고 거기에 대응하도록 자극과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인식과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빠져있다.

 

세계는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는 재료이다. 사람들은 세계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교육한다. 각 개인은 개인적 사회적 현실과 그 안의 모순을 인식할 수 있고 현실 인식과 비판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언어를 말하고 참여할 때 존엄성을 획득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피억압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대상에 머물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의식화'라는 용어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모순들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현실의 억압적 요소들에 맞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의식이란 현실을 단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것 또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의식은 사고력이고 비판능력이다.  의식화는 대중을 파괴적 성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다대중이 역사 과정에서 책임 있는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비판적 의식을 자극할 수 있으면 사회적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이념에 빠져 눈이 멀게 되면 비합리적이 되고 현실의 역동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 해석하기 마련이다. 보수는 현재를 길들여서 미래를 이 길들여진 현재로 재생산하고자 하며, 진보는 미래 예정된 것, 불가피한 운명으로 간주한다. 보수에게는 오늘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불변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진보는 내일이 사전에 정해져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둘 다 반동적이다. 그들은 벗어날 수 없는 확실성에 갇혀 자신만의 진리를 조작해낸다. 진정한 혁명가들은 현실 속으로 더 완전하게 들어가서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변혁하려 한다. 그들은 피억압자의 해방자라고 자처하지도 않는다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억압하고 착취하는 억압자는 그 권력으로 피억압자나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피억압의 약함으로부터 비롯된 권력만이 양측을 자유롭게 한다. 피억압자의 약함을 존중해 억압자 자신의 권력을 완화하려면 대개 허구적인 관용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부당한 사회질서는 죽음, 좌절, 빈곤을 양분으로 삼는 관용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허구적 관용을 베푸는 자는 그 원천에 조금만 위협을 가해도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진정한 관용은 허구적 자선의 근간이 되는 대의명분을 파괴하는 데서 나온다

 

피억압자들에게 인간이 되는 것은 억압자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들은 억압자를 객관화시켜 바라보지 못하며, 자신들의 바깥에 있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 대부분은 피억압자로서의 인식이 부족하다. 농민이 토지개혁을 바라는 이유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주가 되기 위해서다. 그러한 자들은 지주를 위해 일꾼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게 되면, 더 그악스럽게 군다.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더 거칠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피억압자는 억압자를 자신의 인생 모델로 삼는다. 피억압자 다수는 사회 개혁을 위한 혁명을 자신의 개인적 혁명으로 만들고자 한다. 예전 억압자의 그림자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명령이란 명령자가 자신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억압자의 이미지를 내면화하고, 그 지침을 채택하고 있으므로써 피억압자가 벗어남을, 자유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자유는 피억압자의 이미지를 벗고 의식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책임성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자유는 책임성을 가지고 추구해야 한다. 자유는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필수조건이다.

 

강압적이고 비인간성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향해 투쟁해야 하는 것은 억압자가 아니라 피억압자다. 피억압자는 지배구조에 파묻혀 적응한 채로 체념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투쟁에 나서기는 어렵다. 투쟁은 억압자에게 위협이 될 뿐 아니라 피억압자의 동료들에게도 더 큰 억압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자신의 공포에 압도된다면 다른 사람을 따르게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따를 수도 없고, 자신의 양심을 따를 수도 없다피억압자는 참된 동료보다 집단성을 더 선호하게 되고, 자유를 선호하기보다 현재의 부자유한 상태에 적응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된다. 피억압자는 자유를 원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워한다그들은 자신인 동시에 자신이 내면화한 의식의 소유자인 억압자이기도 하다. 선택해야 한다내부 억압자를 거부할 것인지 복종할 것인지, 유대를 택할 것인지 소외를 택할 것인지, 선택할 것인지 방관자가 될 것인지, 말할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 피억압자의 비극적인 딜레마다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은 자신을 찾기 위한 부단한 투쟁 속에 있는 피억압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확립해야 할 것을 학습하기 위한 교육학이다. 이 교육학은 억압과 억압의 원인들을 피억압자가 성찰할 대상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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