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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장우석)

모든 것은 정의에서 시작되었다.*

길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닮음의 개념은 넓이와 부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험에 따르면 근육의 힘은 근육의 단위 면적의 크기, 즉 근육의 겉넓이에 달려있다고 한다이 결과는 어떤 동물의 길이가 2배될 때 체적은 8배가 되지만, 근육의 힘은 4배가 되어 힘은 체중의 절반이 된다는 사실이다길이가 작은 동물일수록 체중과 근육의 힘의 격차가 작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길이가 매우 작은 개미나 쇠똥구리가 자기 체중의 몇,배가 되는 물건을 지고 거뜬히 움질 일 수 있는 이유중 하나이다.

 

수학의 이러한 힘은 추론의 힘이다. 추론은 그 시작점인 정의에서 비롯된다모든 지식은 기본 정의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정의는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드는 것일까? 정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다. 정의의 구성이 유동적이라는 말은 주어진 정의를 받아들이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정의를 만들어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보는 주체적 경험을 하는 일이 가능하다. 평행사변형을 보고 마주보는 두변이 서로 평행하다를 정의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다 간단한 정의가 없을까?’ 하는 과정에서 마주보는 한 변이 평행하고 그 길이가 같다로 정의해 볼 수도 있다. ‘평행사변형은 마주보는 한 변이 평행하고 길이가 서로 같다로 정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의가 더 옳으냐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정의를 만들어보고, 그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정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추상abstraction능력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여러가지 관찰과 사색을 통해 정의를 만들어보고, 그에 근거한 새로운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추론능력이 모든 지식의 형성 과정이며, 동시에 문제 해결과정이다.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먼저 기초를 형성하는 개념들이나 사실들속에 바탕하고 있는 정의를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논리적인 문제해결 과정이자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정의가 부실했다면 개선해야 하고, 정의에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면 정의에 근거해서 합당한 사후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학적 사고는 이렇듯 현실의 문제 상황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해결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두 삼각형의 합동을 하나로 옮겨서 하나의 정의로 정의할 수 있다. 그 정의는 사실상 대응하는 변의 길이와 각이 모두 같다는 의미다. 즉 같음은 길이와 각도의 같음이며, 이는 측량을 전제로 한다. 사람마다 모두 글씨체가 조금씩 다르지만 특정한 글자를 같은 글자라고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연결 상태가 같기 때문인 것 같다. 연결 상태는 구조와 관련된다. 이런 사례를 통해서 길이, 각도, 넓이, 부피 등 측량과 관련된 요소를 배제하고, 연결 상태만을 고려하여 같음과 다름을 새로이 정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같음은 대상들 속에 뭔가 불변하는 요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구체적 현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본 정의가 만들어지고, 그 정의로부터 현상이 체계적으로 정리(조직)되면서 자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기존 지식들이 새로운 문제해결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심화, 확정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유추나 귀납 등이 틈틈이 사용되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전체 과정은 수학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지식이 구성되는 보편적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기하학은 이런 과정을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보여준다그림을 상황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문제해결 과정에서 조건들을 분석하고, 필요한 지식들을 조합하는 통찰력이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더 깊게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도형의 세계를 탐구하는 기하학에서 추론과 그를 통한 지식 구성을 가능케 하는 기본수단이 시각이라는 감각(직관)이었다면, 이제 들어가 볼 대수학은 추론 수단으로 문자를 사용한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