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미약한지 잘 알지못한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는 상태로 홀로 남겨졌을 때는 본능적인 무질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가 대개는 뭔가 고통스럽고 신경쓰이는 일에 생각을 멈춘다.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일로 관심이 모아진다. 실제 혹은 가상의 고통이나 최근에 유감스러웠던 일, 또는 오래된 갈등 등에 관심이 쏠린다. 이런 쓸모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엔트로피가 바로 정상적인 의식의 상태다.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 현재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로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머릿속을 채움으로써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막대한 시간을 텔레비전 보는 일에 소모하는가 하는 의혹을 풀어준다. 독서나 다른 사람과의 대화 혹은 취미생활 등과 비교할 때, 텔레비전은 심리에너지를 최소한으로 투자하고 쉽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끌게 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골치 아픈 개인적인 문제를 떠올리게될까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일단 사람들이 정신적인 혼돈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봉책을 쓰기 시작하면 그 습관을 버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TV시청처럼 어떤 외적 자극에 정신을 내맡기기보다는 습관을 통해서 정신을 통제하는 것이 의식의 혼돈 상태를 피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야기, 시, 노래, 화학공식, 수학적 연산, 역사적 사건들, 성경구절 그리고 지혜가 담긴 인용구 등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의식은 주변환경의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다. 혼자서도 언제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며, 자신의 정신에 담긴 내용에서 의미를 찾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혼란에 빠지지 않으려면, 텔레비전, 독서, 대화, 약물 따위의 어떤 외부 자극이 있어야 하는 반면 다양한 양식의 정보들이 기억 속에 가득한 이들은 자율적이며 독립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억을 좀더 값진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시작 방법은 시, 고급 요리, 전쟁의 역사, 야구 등 자신이 진정 관심이 있는 주제를 찾아낸 다음 그러한 특정 분야의 핵심적인 사실과 인물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언제나 물질적인 보상보다 사고하는 즐거움이 그 동기가 되어왔다. 가장 독창적인 고대 사상가 중의 한명인 데모크리토스는 고향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데모크리토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에 골몰하여 며칠씩 있는 것을 보고 어딘가 이상하며 아픈 것이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그는 미친 것이 아니라 생각의 플로우 속에 빠져 있던 것이다. “무엇인가 아름답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실로 거룩한 것이다. 행복이란 힘이나 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진실과 다양함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의식을 통제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었다.
때로는 그와 같은 내적 상징 체계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는다는 것이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의 인구에 비해서 시인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까닭은 무용담을 암송하는 것이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들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방법으로 고착화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세기 동안 아이슬란드인들은 그들 조상의 공적을 연대별로 묘사한 서사시의 운문을 기억속에 보전해 왔을 뿐 아니라 새로운 운문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몹시 추운 밤에 외부와 단절된 채 불안한 오두막 속 불가에 웅크리고 둘러앉아 밖에서 그칠줄 모르고 휘몰아치는 북극의 겨울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를 크게 암송하곤 했다. 만일 아슬란드인들이 그런 긴 겨울 밤을 침묵 속에서 무서운 바람소리만 듣고 보냈다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절망만 가득 찼을 것이다. 내적 상징 체계가 없는 사람은 너무도 쉽게 대중매체의 포로가 된다. 이들은 선동 정치가에게도 쉽게 현혹되며 연애들을 보고 쉽게 기분이 풀리고, 장사꾼들에게 쉽게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마약 그리고 유창한 정치적 구호나 종교적 구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의지할 것이 너무 없어서 즉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내적 규칙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보를 제공할 능력이 없을 때 우리 생각은 무질서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전하는데 중요할 뿐 아니라, 매우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사진을 보관하고, 슬라이드와 가족영화를 만들고, 여러기념품을 모아 집에다 두는 것은 -그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그 역사적 의미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사실상 그 가족의 일생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것은 삶의 질적 향상에 크다란 기여를 한다. 과거의 추억은 우리를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의식이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기억 속에서 특별히 즐겁고 의미있는 사건들만 골라서 보전하게 됨으로써 미래를 대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과거를 창조해 낼 수 있다. 물론 그런 과거가 모두 진실이 아닐 수는 있다. 기억은 계속해서 재편집되는 것이며 다만 우리가 그 편집 과정을 창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외부의 통제를 받는 지식은 마지못해 습득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측면이 흥미를 주는가를 찾아내고, 그것을 연구해 보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깊은 자료와 세부상항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면서 발견하는 사실들을 개인적인 스타일에 맞게 기록해 나가는 순간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엿한 플로우 경험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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