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경험이란 주어진 도전을 잘해결할 수 있고, 목표가 명확하고, 분명한 규칙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암벽등반, 춤, 요트타기, 체스 등과 같은 활동이 플로우를 유발시키는 이유는 그 활동 자체가 최적경험에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이 활동에는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습득해야 하며, 목표가 분명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며 또한 통제가 가능하다.
프랑스 심리학자 카이유아는 모든 종류의 놀이, 활동을 네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아곤(agon)은 경쟁하는 게임이다. 알레아(alea)는 주사위로부터 빙고에 이르기까지, 확률 또는 요행을 바라는 게임이다. 일링크(ilinx) 또는 버티고(vertigo)는 일상적인 지각을 변형시켜 의식을 바꾸는 활동을 말한다. 스카이 다이빙이 여기에 속한다. 미미크리(mimicry)는 대안적 현실이 창조되는 활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춤, 연극, 예술 관련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오직 그 활동 자체에만 집중될 때 경쟁이 도움이 된다. 만일 승리나 관객의 인기, 좋은 조건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과 같은 외적 목표에 관심이 있다면, 경쟁은 오히려 활동에 대한 집중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요행을 바라는 게임은 명확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주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활동이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지각방식을 바꾸는 모든 활동은 즐겁다. 이는 술, 마약 등 모든 형태의 환각제가 가지는 마력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이것들을 통해서 의식이 확장되지 않는다. 결국은 그와 같은 의식의 인위적 조작으로 인해, 의식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모방게임에서는 환상, 변장을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 이상의 자신을 느낀다. 일단 한 문화의 규범과 습관이 되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굳게 믿는다. 피그미족들은 쓸모있고 도전적인 활동들을 통해 타인 및 환경과 잘 어우러져 화목하게 살아간다. 사냥이나 마을의 공동작업이 없을 때는 노래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원시적인 여느 문화에서 처럼. 피그미 사회의 모든 성인은 능숙한 일꾼일 뿐 아니라 연기자, 가수 ,예술가, 심지어 역사가가 된다. 이들의 문화는 물질적 성취의 기준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지만, 최적경험을 제공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 삶의 방식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평균 미국 성인들은 일주일에 단 30시간만 일하며, 또한 직장에 있기는 하지만 10시간은 공상에 잠기거나, 다른 동료와 잡담하는 등 일과는 무관한 짓으로 소비한다. 여가에 사용되는 것은 20시간 정도이다. 구체적으로 일주일에 20시간의 여가를 어떻게 쓰는지 순서대로 살펴보면 주의를 집중하여 TV시청에 7시간, 독서 3시간, 활동적인 일 (조깅, 악기연주 등) 2시간, 그리고 사회적 활동(파티 영화관람, 가족과 친구 놀이 등)에 7시간을 쓴다. 미국인들이 매주 깨어 있는 나머지 50-60시간은 먹기, 운전하기, 쇼핑, 요리, 빨래, 물건 정리 등 기초생활 활동에 사용하거나, 혼자 있거나, 허공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구조화 되지 않은 여가를 위해 보낸다. 우리 시대의 가장 모순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충분한 여가시간이 있음에도 그것을 즐거움으로 변회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몇 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할 때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맛볼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조상들보다 삶을 더 즐기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스스로 즐거워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휘황찬란한 곳에 있어도 지루함을 느낀다. 그래서 외적 요인 즉 플로우를 유발하는 활동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플로우를 가능케 하는 내적인 조건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 중에는 매우 다양한 학습장애 유형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의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크게는 주의력 장애로 분류된 후 다시 세분된다. 이처럼 주의력 장애는 유전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어린시절에 받는 경험의 질이 이런 장애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주의력 장애는 학습을 방해할 뿐 아니라 효과적인 플로우 경험도 방해한다. 사람이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할 때, 학습을 한다거나 진정한 즐거움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의식 또한 플로우 경험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장애요인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며,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을까, 혹은 두려워 하는 사람은 진정한 즐거움을 영원히 경험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보통 자기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대신에 무엇이든 사소한 것 조차 그것이 자신의 바램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따져서 평가한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뭐든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완전히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자의식이 구조화 되어 있으며,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의식 안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즐거움의 추구를 방해하는 많은 환경적 요소들이 있다. 이 요소들 가운데 일부는 자연적이며, 어떤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북극에 사는 사람이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즐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연 조건이 혹독하다고해서 전적으로 플로우 경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땅에 사는 에스키모인들도 노래하고, 춤추고, 아름다운물건을 조각하는 법을 배우며, 경험에 대한 깨달음과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없었던, 추운 지역 또는 사막지역의 사람들은 아마도 결국 인생을 포기하고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을 극복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혹독한 자연만으로 플로우를 막을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플로우를 방해하는 사회적 조건은 극복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노예제도, 억압, 착취, 문화적 가치의 파괴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지금은 멸종된 카리브해 섬의 원주민들이 정복자인 스페인 사람들의 농장에서 강제 부역했을 때, 그들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삶이 무의미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마침내는 더 이상 자손을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많은 문화들은 더 이상 즐거운 경험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걷기가 좋은 예이다.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가장 단순한 활동이다. 하지만 복합적인 플로우 활동이 될 수 있으며, 예술의 경지에 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 걷는 것도 다양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신체를 조화롭게 움직여서 플로우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활동들이 다양하게 있다. 아마 그 중에서도 의미있는 것은 춤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즐거움에 대해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性이다. 다른 모든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性도 즐거운 활동으로 변형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지루한 것이 된다. 상대방을 진정 이해하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요가, 무도, 보는 기쁨, 듣는 기쁨, 맛보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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