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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FLOW) 칙센트미하이 지음

의식, 의도, 주의

 

각 시대의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깊은 생각없이 즉흥적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했던 구성원은 그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한편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던 역사적 시기도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처럼 말이다. 당연히 이런 시대에는 자기감정을 조절하는데 애쓰는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대적 강조점이 어떻든지 간에 자기의식을 감수하며 조절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식은 신경계라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인해 존재하며, 우리의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의식의 지능 방식은 완전히 생물적 프로그램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에 의식은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식은 스스로가 유전적 지시를 뛰어넘는 독립성을 가지도록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의식의 주요한 역할은 우리 주위에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표상하게 하는 것인데, 이 표상을 우리 몸이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의식'은 우리의 감각, 지각, 감정, 사고와 같은 정보들을 총집합한 후 우선 순위를 정하는 정보본부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외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간에 우리는 의식의 내용을 변화시켜 행복하게도 혹은 비참하게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않는 상황을 극복 가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감당해 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외적인 역경이나 장애물을 감내하는 인간의 능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이런 능력은 우리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의식적 사건들 (감각, 느낌, 사고, 의도 등)이 발생하고 우리 스스로가 이들의 진행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감각기관들로부터 입력된 수많은 사상들이 비교되고 처리되는 정보의 중심기관의 역할을 하는 의식은 아프리카의 기근, 다우존스 지수, 가게에서 빵을 사야 한다는 생각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의식의 내용이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식의 정보화들을 순서화하는 힘을 '의도'라고 부른다. '의도'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라거나 성취하기를 원할 때 발생한다. 의도 자체도 생물학적 요구 또는 내재화된 사회적 목표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보들이다의도는 우리의 주의를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가게 하거나, 좋아하는 것에 오랫동안 정신을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의도의 발현은 종종 다른 이름, 이를테면 본능, 욕구, 충동, 욕망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갖는다. 현실적 목표는 신체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건강하게 잘 사는 것, 섹스, 잘 먹는 것 등)과 사회에 의해 조건화 된 것 ( 공부 잘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가능한 소비생활을 많이 하는 것, 일에 대한 성취 등)에 근거 하고 있다. 우리 신경계가 주어진 시간내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있어서 우리가 미처 처리하기도 전에 우리의 의식 속으로 밀려와서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껌을 씹으면서 걷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우리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동시에 행복함과 슬픔을 느끼기는 힘들다. 또한 걸으면서 노래하고, 동시에 은행잔고를 정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활동들이 '주의'의 대부분을 소진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여가 시간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텔레비전 시청으로 소비한다. 텔레비전을 볼때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 내용들이 너무 뻔하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사고능력, 기억능력, 우리의 의지등은 거의 필요치 않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집중력, 사고력, 자신감 등이 매우 낮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 외 대다수 사람들의 여가 활동도 역시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다.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거나, 사람들과 노닥거린다거나, 창밖을 멍하니 쳐다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정보는 두갈래의 길을 통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 하나는 선택적인 주의를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명령에 순종하는 습관화된 '주의'를 통해서 이다. 예를 들어서 고속도로를 달리면 수많은 자동차를 지나치지만, 하나하나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동차의 색, 디자인이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곧 뇌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만약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 차의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차에 대해서 초보인가? 음주운전인가? 등의 경우 말이다. 우리가 목격한 사건은 일단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머릿속에서 일단 평가단계를 거쳐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판단은 전광석화같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과정이 존재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주의'다. 이 주의라는 것이 지천에 까려 있는 정보 가운데 필요한 것만 선택하게 한다. 주의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무한하지 않다. 주의는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 이상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집중할 수 없다. 기억의 창고에서 정보를 꺼집어 내는 것, 꺼집어 낸 정보에 집중하는 것, 그 정보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 행동을 취하는 것 등이 유한한 정신의 정보처리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주의를 집중할 수도 있고, 전혀 쓸데없는 것들로 인하여 낭비할 수도 있다. 삶의 모양과 내용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주의를 사용하는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주의 구조가 문화나 직업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달라지는지는 실제 사례들을 보면 명백해진다. 에스키모 사냥꾼들은 열 가지도 넘는 서로 다른 종류의 눈을 구별할 수 있고  바람의 방향과 풍속을 민감하게 지각할 수 있다. 멜라네시아 선원들은 본토로부터 천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는 바다에 떨어뜨려도 몸을 통해서 전달되는 조류의 흐름만으로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아낼 수 가 있다. 음악가는 일반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음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주식거래 전문가는 시장의 조그만 변화를 파악할 수 있도록  좋은 의사는 환자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주의가 개발되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주의이므로 또한 기억, 사고, 느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의를 심리에너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주의는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자아는 내 의식으로 들어온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모든 기억, 행위, 욕망, 쾌락, 고통들이 그 안에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쌓아왔던 내 자신의 목표들에 대한 위계적 순서를 갖고 있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우리의 신체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 집. 가족과 우리의 자아를 동일시하기도 한다. 자아라는 것은 의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주의는 자아를 형성하므로 자아는 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의식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심리적 무질서' 이다. 다른 말로하면 이미 마음 먹었던 의도나 이를 실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기지 이름을 붙이는데 바로 고통, 공포, 불안, 분노, 질투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무질서들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심리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 정보가 우리의 목표들과 일치하게 되면 심리적 에너지가 무리 없이 작용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별다른 근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현재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 자아를 강화시킨다. 암벽등반이란 매우 짜릿한 경험이다. 이 행위는 어찌보면 자기 내면을 수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온몸에 고통이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면을 돌아보면 모든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온 것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절정에 이른듯한 자기만족감도 느끼게 된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이기게 되면 당연히 세상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게 아닌가? 이 투쟁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기보다 사실상 우리 의식에 무질서를 부추기는 엔트로피와의 싸움이다. 정보가 우리의 의식을 방해할 때마다 우리는 '심리적 엔트로피'라고 불리는 내적 무질서 상태, 즉 자아기능의 효율성을 손상시키는 상태를 맞게 된다. (심리적 엔트로피: 의식의 무질서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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