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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

노년은 떠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평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설계한 삶을 자기 힘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후회할 일도, 자랑할 일도 다 많을 것이다.  남과 자신을 용서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자신이 선택한 대로 열심히 잘 살았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의 삶은 훌륭했으며 인생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죽음은 슬픈 일로 여긴다. 물론 죽음은 모든 것과 작별하는 것이니 많든 적든 애통함이 따를 밖에 없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이면일 뿐이다.  태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통하게 느낀다면, 그 감정은 죽음 그 자체보다는 기쁨과 공감의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오늘날 흔히 보는 조문과 장례식은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행사인 동시에 상실감에 빠진 유족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아이들의 친구나 거래처 직원들이  내 장례식에 오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누구보다 강렬한 우정의 철학을 설패했던 니체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지만, 정신병원에서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다. 연암 박지원도 그런 죽음을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그는 노환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약을 물리치고, 술상을 차려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친구들이 말하고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나의 죽음 파티에 인생의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뜻을 함께 하고,  사랑과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  시련과 고통을 함께 견뎌냈던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한다. 미국의 유명한 회계법인 KPMG 회장이었던 유진 오켈리는 53세에 죽었다. 오켈리는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편지와 전화로 작별인사를 했다.  가까운 친지들을 초대해 좋은 식당에서 고급와인을 나누면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그 90일 동안의 경험과 사색을 책으로 남겼다.

 

나는 몸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죽은 후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진 나에 대한 기억과 느낌뿐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식들이 촛불켜고 음식을 차린 제사상 앞이 아니라,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숨쉬는 자연의 품에서 그런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 만큼은 잘 준비해서 맞이하고 싶다.  애통함을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행성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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